어느 인류학과 교수님이 마을 어른들과 마 캐러 덕유산 깊은 골짜기로 갔더래요. 늦은 밤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배추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모조리 고수풀이 들어가고 국에도, 닭고기에도… 순간 고개가 갸우뚱하더래요. 그 참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 교수님 마을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어 신참내기 하느라고 잠자리도 맨 윗목에 눕게 되었더래요.몇 줄 서가에 눈이 멎어 보니, 그 집 족보더래요. 또 이상하다 이상하다. 우리 나라 성씨 중에 정씨는 丁자나 鄭자 뿐인데 程씨 성을 가진 족보라니? 주인 불러 직함 밝히고 족보 좀 보여줄 수 있나 했더래요. 시조 족보 훑어보며 그 교수님 무릎을 쳤다지요. 이 사람들 병자호란 때 청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나와 돌아가지 못하고 그 깊은 산골짜기로 숨어들었더래요.
고수풀, 그 것은 잎에서 빈대냄새가 난다하여 빈대풀이라고도 하며 알프스엔 안젤리카라는 친구를 아프리카 북부엔 파슬리를 유럽이나 서아시아에는 케러웨이란 친구를 두고 있지요. 우리나라엔 미나리나 궁궁이란 친구가 있고 고수풀의 고향은 지중해라지요. 사람들은 소스를 만드는데 향료로 썼을 뿐만 아니라 문명의 초기시대부터 이집트 사람들은 시체와 함게 고수풀을 묻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는 고수풀의 강한 냄새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보호하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더래요. 그리하여 고수풀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바빌론의 사형장에서도 자랐다지요.
그 후 이슬람의 전파와 더불어 고수풀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더래요. 페르시아 건너 인도까지 가서는 힌두불교를 누르고 이슬람 왕국을 만들어 세계에서 꼽는 불멸의 타지마할을 만들지요. 이슬람교도는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매장한다는데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로 열네 번째 아기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위해 무려 22년에 걸쳐 무덤을 지었는데 그곳에도 물론 코리엔다(고수풀)를 함게 묻었겠지요. 종교가 그러할진대 거기에 따라가는 음식은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코리엔다는 이슬람 사원뿐만 아니라 불교사원의 승려들까지도 먹게 되었다지요. 인도에서 다시 실크로드를 따라 우즈베키스탄이나 위구르족이 사는 신간성으로 전파되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더래요.
인도를 여행하며 허기를 채울 것을 찾다 커리와 샐러드를 주문하니 무와 당근을 얇게 썰어 넣고 소금, 후추, 고수풀을 섞어 만든 것이 전부였다.
동두천 시장에 갔다가 고수풀을 발견했다. 어찌 반가운지 사 가지고 왔다. 샐러드 커리를 만들 때 넣으면서 이집트에서 생겨나와 우리에게로까지 온 고수술의 여정을 생각해 보며 문화는 잡식성일수록 우세하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 문화는 고수풀을 어떻게 응용해 보일 것인지….
이수희 / <동두천문학> 2006·통권 90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