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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정씨대종친회 송산 종중(충의공파·회장 정기승)은 11월1일(음 9.16) 오전 11시 충의공 농포 정문부(1565~1624)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충덕사(의정부시 소재 유형문화재)에서 그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추계 제향을 올렸다.
제향은 유림(儒林) 주관으로 조선시대 전통 제례 방식을 따랐으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전국의 유림(儒林)을 초대하지 못하고 참여 제관을 축소했다.
초헌관 송좌영, 아헌관 고광설, 종헌관 정두섭 대종친회 회장을 비롯한 경기지역 유림(儒林)과 고죽재공 정행섭 회장, 정판섭 전 서울지회장 등 후손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홀(唱忽)에 따라 제례를 엄숙하게 봉향했다.
의정부시 효자봉 기슭에 자리한 임진왜란(1592~1598) 영웅 정문부 장군은 농민들로 구성된 관북의병군(關北義兵軍 1592~1593)을 조직하여 관(官)의 도움 없이 조총(鳥銃)으로 무장한 왜적(倭敵) 가등청정(加藤淸正 1562~1611)의 22,000여 대군과 맞섰다.
경성(鏡城)전투(선조25년 9월16일), 길주(吉州) 장평(長坪)전투(선조25년 10월30일), 쌍개포(雙介浦) 임명전투(선조25년 12월10일), 길주(吉州) 남문밖전투(선조26년 1월19일), 단천(端川)전투(선조26년 1월23일), 백탑교(白塔郊)전투(선조26년 1월28일)에서 6전6승 전공을 기록했다.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 전공 중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 정문부의 길주대첩을 ‘임란 3대첩’으로 수정해야 하고, 이순신의 해군대첩과 정문부의 육군대첩을 남충무(南忠武), 북충의(北忠毅)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또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격퇴시키고 함경령(咸鏡領) 천리 땅 육진(六鎭)을 우리 국토로 완전 실지회복(失地回復)시킨 것은 육진을 개척한 고려의 윤관 장군, 조선의 김종서 장군과 버금가는 전공이라고 했다.
후손들은 “정문부 장군 묘역을 효행과 정신교육강화 현장으로 삼아 실천하고,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계승 발전시켜 달라”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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