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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많이 알려진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의 작가 김려령의 장편소설 ‘너를 봤어’(2013, 창비)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폭력’과 ‘사랑’을 다룬다.
폭력 중에서도 ‘근친 폭력’을, 사랑 중에서도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러면 안되는 사랑’을 소설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받은 ‘폭력’과 어머니의 ‘거짓’에 상처받으며 지내온 유년시절과 허울 좋은 인기작가였지만 ‘사랑’도 ‘정’도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온 게 삶의 전부인 정수현.
사는 게 내내 사막인 수현에게 단비 같은 존재인 서영재를 문학상 시상식에서 처음 만난다.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수현이 발랄하고 화사한 영재를 통해 구원의 빛을 보았다.
‘몰라.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 걸렸다.’
하지만 영재에 대한 수현의 생각은 결국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로 귀결된다.
수현에게 상처로 온 몸에 새겨진 폭력이 아버지, 형, 아내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으로 이어지기에 영재와의 ‘생애 최초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여서도 안되었다.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기운이 영재에게도 닿으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현이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악마 같은 모습을 보였을 때 스스로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수현은 저수지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스스로의 사랑을 완성한다.
문학의 기능 중에 ‘결핍의 보상’이라는 것이 있다. 수현은 어린 시절의 불행, 분노, 상처가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를 얻을 수도 있었다.
‘지나치게 정석의 코스를 밟아 누구는 내게 그래서 고생살이 없다고 한다. 그것(문학)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도피와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과 서러움을 그들은 몰랐다.’
(김려령 작가도 ‘작가 후기’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아 소설을 쓴다고 했다. ‘살인 충동’이 아니라 죽이고 싶은 일이 상처와 상처로 일어난 모든 일을 뜻할 것이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사랑을 통해 수현이 ‘잃어버린 삶의 보상’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락 같은 가족 관계와 내면 깊숙이 뿌리를 내린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는 한 발자국의 사랑의 동반도 허락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막으려는 수현의 선택.
수현은 과연 진정한 사랑을 얻었을까? 소설은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목숨으로 흥정하는 사랑은 죽어서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다.’
‘사랑은 잘 놀고 있는 고무줄 끊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무거운 쓰레기통을 살짝 들어주는 거거든.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헛갈리게 굴지 않는다고. 고무줄 끊는 건 진짜 나쁜 놈도 하잖아. 사랑은 앞뒤 잴 것 없이 명확한 거야.’
소설의 주인공 정수현에게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도 있다.
scarf – scar, 상처(scar)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스카프(scarf)처럼 빛나게 하는 것이 사랑이야!
이 글을 읽은 여러분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리고 아련하고 아이러니하지만 아름다운 아우라를 가진 ‘너를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