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대학교는 뉴욕에 있는 아이비리그 사립대학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101명이나 배출하여 하버드 다음으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이다. 3명의 미국 대통령, 9명의 연방대법원 대법관, 29명의 해외 국가원수, 121명의 퓰리쳐상 수상자, 28명의 아카데미상 수상자, 20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한 대학이다. 버락 오바마, 워런 버핏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이 학교의 졸업식에서 초대되어 연설한다는 것은 최고의 명예이며 컬럼비아 대학 출신만이 초대될 수 있고 연설 후 명예박사학위가 주어지는 굉장한 사건이다.
2018년 졸업식에 기조연사로 초대된 여자 명사가 있었다. 그녀는 한국계이고 요리사이고 이름은 ‘주디 주’이다. 그녀는 1974년 미국 뉴저지 출생이다. 아버지는 한국동란시 이북에서 월남했고 제주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자라 죽기 살기로 공부하여 서울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고생 끝에 미국 의사가 된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어머니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화학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주디 주는 컬럼비아 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후 뉴욕 증권가 모건 스탠리에 입사해서 5년간 증권분석가로 기관, 채권, 파생상품 영업을 담당하였다.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꼼꼼히 살펴보고 온종일 시황표와 씨름하며 숫자 통계에 묻혀 살았다. 당시는 금융계가 워낙 각광받던 시절이라 모든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살 수는 있었지만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열정은 사라지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이것이 아닌데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갔을 때 그녀의 눈에 띈 책이 요리책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해주어서 먹고 자란 한식이 그리웠다. 뒷베란다 장독대에서 익어가는 김치가 생각났고 마당에는 깻잎이 푸릇하게 자라나 이를 사용한 깻잎 요리도 생각났고 한국의 김, 미역, 식혜도 생각났지만 무엇보다 더 어머니의 순두부찌개가 그리워졌다.
한식은 그녀 가족에겐 사랑의 언어였고 항상 곳곳에 가득차 있었다. 부모님들은 그녀가 모건 스탠리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였지만 자신은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보다는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의 언어였던 한식을 생각하며 요리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바로 실천에 옮겼다. 뉴욕 프랑스 요리학교 FCI를 수료하고 뉴욕 슬로푸드 USA를 설립하였고 부지런히 요리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그녀의 전공은 공학이었지만 과감히 금융회사에 도전했고 또다시 과감히 요리사에 도전한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이 두려움에 대해 그녀는 컬럼비아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은 달라집니다. 문제는 그 두려움을 어떻게 에너지로 바꾸는가 하는 것이죠. 만약 여러분이 결단력, 강인함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모든 불안한 에너지와 걱정을 용기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도전하는 용기, 위험을 무릅쓸 용기 그리고 실패에 맞설 용기 말이죠. 여러분의 젊음은 지금이 최대로 자유로운 시기이며 지금이 바로 대담한 용기를 가질 때입니다. 세상의 방해에 대하여 지금이 바로 용기를 내야할 때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300여척의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앞두고 했던 명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 생각나는 연설이다. 그녀가 직장을 옮긴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하향시키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더 적은 임금, 훨씬 더 긴 시간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빠른 출세의 길에서 뛰어내려 높은 연봉을 포기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에어컨이 잘 된 사무실에 앉아 우아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을 버리고 뜨거운 불길 앞에서 하루 15시간 이상 서 있는 일은 특히 힘들었다.
매주 스파와 매니큐어를 즐기던 손과 팔은 화상, 멍, 나이프에 의한 상처 등으로 평안한 날이 없었다. 친구나 동료들과 미슐랭 별 3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즐기던 만찬을 이제는 자신이 요리해야 했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발은 붓고 어떤 때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데도 괜찮아?” 그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나는 요리사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야.”
그녀는 드디어 요리사로 뛰어든지 8년 만에 대단한 성과를 내고 만다. 2010년 영국 ‘아이언 쉐프 UK’ 요리경연대회를 통해 일약 유명해졌으며 ‘아이언 쉐프 아메리카’와 ‘아이언 쉐프 UK’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플레이보이 클럽 레스토랑의 총 주방장을 맡고 있으며 영국 런던과 홍콩에 진주라는 한식당을 직접 운영한다. 그리고 NBC의 ‘투데이 쇼’ ‘웬디 윌리엄 쇼’ 등 프로그램에서 한국요리를 소개하고 있으며 미국 음식 전문채널 ‘푸드 네트워크’에서 한국음식 간단히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의 요리재료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김치는 물론 고춧가루, 김밥, 마늘, 깻잎, 보쌈, 비빔밥, 통닭, 안주, 폭탄주 등등의 모든 이름을 한국말로 소개하는 한식 홍보대사인 것이다. 아이언 쉐프 UK에서 심사위원이 김밥을 스시로 표현하자 바로 항의하여 사과를 받고 김밥으로 정정한 사건은 너무도 유명하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을 옛날 전쟁에서 장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곧 수천수만의 군사들이 활과 창과 칼에 의해 피 흘리며 죽어나갈 전쟁에서 전쟁 시작 전 양군의 장수들은 호탕한 웃음을 웃으며 적에게 호령한다. “우~하하하하하. 가소롭도다. 너희들은 오늘 모두 제삿날인줄 알아라. 우~하하하하.”
마음 속으로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군사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일부러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것이다. 두려움을 웃어서 버릴 수만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크게 웃는 일이다.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