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의 양대 산맥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대에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양김시대’를 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권의 거목 유진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해 일대 파란을 일으켜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유진산 신민당 당수는 김영삼의 도전에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평가절하했지만 결국 40대 기수론에 밀려 7대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유진산이 언급한 구상유취(口尙乳臭)는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신진세력을 비하하는 용어로 회자됐다.
유진산의 판단은 틀렸다. 국민은 유진산의 타협정치를 거부했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밀착 의혹이 짙었던 유진산의 정치로는 민주화가 어렵다고 판단해 40대 기수론을 적극 지지했다. 양김은 시대정신을 정확히 읽었다. 민주화를 위한 정권교체에 자신들을 희생하기로 했다.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명승부를 펼치며 대흥행에 성공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양김을 새로운 시대를 개막할 지도자로 인정했다. 특히 경선에서 석패한 김영삼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김대중 당선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비록 김대중 후보가 낙선했지만 양김이 야당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이때부터 양김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고, 20여년이 지난 후 사이좋게 차례차례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양김이 유진산의 구상유취론에 굴복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결실을 맺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이준석 돌풍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준석 돌풍은 헌정사상 유례 없는 제1야당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국민의힘에 세대교체 태풍을 몰고 왔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돌풍에 초긴장상태다. 자칫 제2의 유진산이 될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준석의 자질 논란은 둘째치더라도 우리 정치권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국민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변해야 산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