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남면(南面)에서 태어나 지천명(知天命)이 넘는 세월 동안 남면에서 살며 1년6개월을 면장(面長)으로 재직하기도 한 나의 고향 남면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남면이라는 명칭은 감악산 남쪽에 있는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면의 출발은 조선시대 후반 문헌인 ‘호구총수(戶口總數, 1789)’에 처음 등장한다. 1895년 남면은 양주(楊州)의 속현인 적성현에 있었으며, 적성현이 군으로 승격하여 적성군 남면이 되었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천군에 편입되어 연천군 남면이 되었고, 1945년 ‘미군정포고령’에 따라 연천군 남면은 다시 파주군 남면이 되었다.
그러나 교통 편의 등을 위한 면민들의 요청으로 1946년 양주군에 편입되어 양주군 남면이 되었으며, 2003년 10월 양주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현재의 양주시 남면이 되었다. 실제 남면의 출발은 파주 적성군에서 시작하였으므로 남면이라는 땅 이름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양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남면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양주에서 북쪽에 위치하는데도 남면이라 불리는 것에 의아해 한다. 그러나 땅 이름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남면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남면사무소는 연천군 남면시절 매곡리에 두었지만 1930년대에 신산리 토교장터 신축 건물로 이전하였다가 1950년 6·25전쟁 당시 잠시 두곡리로 옮겼으며 수리를 마친 후 다시 돌아온 후 1981년 6월 전주이씨 전성군파 종중에서 기증한 신산리 토지에 신청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른다.
남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감악산(紺嶽山)이다. 남면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감악산은 양주시 남면 신암리·황방리와 파주시 적성면, 연천군 전곡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높이는 675m이며 정상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소요산과 화학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 서쪽으로는 개성 송악산까지 조망된다.
감악산은 경기북부지역에서 소요산(동두천시), 왕방산(포천시)과 더불어 유명한 산으로 양주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경기오악(京畿五岳, 관악산, 화악산, 운악산, 송악산, 감악산)의 하나로 숭배되어 왔으며, 고려시대에는 매년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에는 연대 미상의 감악산비가 있는데, 당나라 설인귀의 비라고도 하고 광개토대왕의 비, 진흥왕 순수비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글씨가 씌어있지 않아 어떤 비석이라고 결론을 내지는 못한 상태다.
양주시는 감악산을 둘러싼 3개 저수지를 연계한 관광과 휴양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연차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아직까지 양주시 11개 읍면동 중 도시화의 속도나 사회기반시설 등이 미비한 지역이지만 앞으로 남면은 감악산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친화적인 발전의 표본을 보여줄 것이다.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청정지역으로서 이제는 ‘남면의 시대’가 점점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생도 여백이 많아야 아름답다. 백지에 다 칠해진 그림이라면 더 이상 그릴 게 없다.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어딘가 여백이 있어 채우고 싶은 욕망이 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어야 참 맛의 인생이라고 하듯이 앞으로 남면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 어떤 그림을 채울지 기대된다. 나 태어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남면에 살으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