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백년 전, 아직 사람들이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믿던 때 어느 깊은 산골짜기 숲 한가운데에 경건한 은자가 살고 있었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진실로 속이 빈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마지막 글을 읽고 세상을 떠난 은자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린다.
은자의 바로 옆에는 도둑이 있었다. 살인과 도박, 약탈을 일삼다가 인간 사회에서 내쫓긴 도둑이었지만, 우주와 일치된 영혼과 절제된 생활을 보며 자기 삶의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느낀다. 은자는 말한다. 인간은 아무나 진실의 세계를 만날 수 없으며, 평생을 노력한다 해도 도둑은 절대로 진실 가까이 갈 수 없다. 하지만 도둑을 제자로 삼아 영원에 대해 가르치고, 죄 많은 삶을 회개하라고 한다. 도둑은 은자의 가르침에 감탄하며 귀를 기울였지만,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스승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누가 자신을 위해 애쓰는 일이 마음 깊이 고맙기만 했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은자는 도둑에게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가까이오지 못하게 한다. 신비로운 존재인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나는 곳에 무지하고 회개하지 못한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은자는 보름달 아래에서 빛나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모습을 설명해 주며, 어리석은 제자가 그 자리에 있다한들 볼 수도 없을 것이라 한다. 대천사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한 도둑은 스승의 명령을 무시하고 몰래 숨어든다. 눈부신 금수레를 타고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의 모습은 스승이 말한 것과 정말 똑같았다.
도둑은 의심한다. 스승이 잘못된 것인지,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도둑은 스승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천사 가브리엘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진짜 대천사 가브리엘이라면 아직 회개하지 못한 어리석은 도둑의 눈에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승은 세상의 모든 욕망과 물질이 의미없다 생각하며 은자가 되었지만, 대천사 가브리엘의 모습으로 나타난 족제비의 농간에 아주 감쪽같이 속아버렸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배우려 하는 도둑조차 알아본 것을 물질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음을 자부하던 은자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인간의 내면을 마법처럼 풀어내는 미하엘 엔데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두 가지 심성을 두 개의 보름달과 은자와 도둑으로 내놓았다. 꽉 찼지만, 이제부터는 버리기 시작해야 하는 때가 바로 보름달 아니던가. 민생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나와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학법이라는 보름달 속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스스로 똑똑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은자처럼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열린 눈으로 깨우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