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민족주의 음악가 3인방으로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를 꼽는다. 이 세 사람 중에 가장 선구적인 작곡가로는 단연 스메타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체코의 역사, 풍경, 인물, 사상, 전설 등 민족적인 주제들로 음악을 만들어 체코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최초의 작곡가이다.
스메타나는 1824년 보헤미아의 리토미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경영하였다. 스메타나는 다섯 살 때 현악 4중주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생일 때 축하공연도 하였고 국가의 축제일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만큼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음악의 대가들처럼 그 또한 어린이 신동이었다.
그의 꿈은 모차르트나 리스트 같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일기장에 “피아노의 기교는 리스트처럼, 작곡은 모차르트처럼 될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고 한다. 열여섯 살 때 리스트의 연주를 직접 듣고 탄복하여 리스트와 같은 현란한 연주 솜씨를 연마하려는 결심을 일기장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스무 살을 지날 즈음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여 레슨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꿈은 그대로여서 틈틈이 창작곡을 쓰기도 하고 지휘, 피아노 연주, 악기레슨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생을 바꾸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풋내기 음악가가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 당돌하게 두 가지를 부탁한 것이다. 한 가지는 자신의 첫 창작곡인 ‘개성적인 여섯개 소품’을 리스트에게 헌정할테니 받아달라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음악학교를 설립할테니 필요한 돈을 후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없고 당돌한 부탁이었다. 생면부지의 풋내기 음악인이 무엇을 믿고 당대의 거장에게 이렇게 하였을까?
그가 믿은 것은 리스트의 인품이었다. 리스트는 후덕한 성품으로 소문이 나 있었으며 당시 ‘음악계의 대부’니 ‘음악계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니 하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알게 모르게 좋은일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스트는 이 풋내기 음악가 스메타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그의 첫 번째 부탁은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두 번째 부탁은 거절하였다. 리스트는 출판업자를 설득해서 얼굴도 모르는 이 당돌한 무명 작곡가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게 주선해줬다. 리스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고 당시로서 대단한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이런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점점 절친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리스트는 스메타나를 라이프치히로 초대하기도 하고 바이마르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해 피아노 연주도 들려주었고 슈만이 발간하는 음악잡지 ‘신음악’ 창간 25주년 기념행사에도 데리고 참석할 정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리스트는 당돌하면서도 재기 넘치고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스메타나에게 감복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사람은 진정한 체코인의 가슴을 지닌 작곡가이며 신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편지 사건으로 시작된 리스트와 스메타나의 인연은 후일 리스트가 스메타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으며 스메타나는 리스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특히 둘 다 피아니스트였지만 리스트에게서 관현악 작곡법을 배웠기 때문에 스메타나는 피아노 작품보다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작품을 훨씬 더 많이 작곡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스메타나는 오페라에 더욱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오페라만큼 민중에게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침 체코에도 새로운 오페라 극장이 생겼고 스메타나가 처음 발표한 오페라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가’를 올려 매우 반응이 좋은 성공을 거두었다. 첫 오페라 성공에 고무되어 작곡한 두 번째 오페라 ‘팔려간 신부’는 더욱 대성공을 거두어 스메타나의 이름을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의 나이 마흔이 훌쩍 넘었을 때 드디어 체코 음악계에 당당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여덟편 외에 관현악과 실내악에서도 걸작을 탄생시켰으니 교향시 ‘나의 조국’, 현악 4중주곡 ‘나의 생애에서’가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체코 고유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유럽음악의 틀에 녹여낸 민족주의 음악가로 ‘체코 근대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매년 5월12일이면 체코 프라하에서는 어김없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세계음악제가 열린다. 스메타나 서거일에 맞추어 열리는 것이며 이 음악제는 반드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스메타나는 체코 음악가들 중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이며 ‘나의 조국’은 체코인들의 애국가인 것이다.
스메타나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민족음악가 안익태 선생이나 홍난파 선생이 생각나지만 전체를 보지 않고 단편적인 몇 가지 일만 들추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일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에게도 민족음악가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속이 상하지만 웃어서 털어버려야지.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