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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에 4호선 당고개역 지나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덕흥대원군묘를 다녀왔습니다.
덕흥대원군 이초는 선조의 아버지로 형인 명종이 자식 없이 세상을 뜨자 그의 셋째 아들 하성군 이균(후에 이연으로 고침)이 왕위에 오른 후 조선 ‘최초의 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아들로 태어났고(덕흥군의 어머니는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 어머니는 하동 부대부인으로 덕흥대원군 옆에 나란히 누워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왕실의 방계에서 처음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였습니다. 선조는 적통이 아닌 방계로 대통을 계승했으므로 친아버지인 덕흥군은 대원군으로 추봉되었습니다. 선조는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묘소를 능으로 승격시키고 싶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 불가하다고 대답하였다 합니다.
그래도 덕흥대원군묘 주변 이름은 온통 덕릉로, 덕릉마을, 덕릉고개로 불려지니 이 정도면 선조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 아닐까요? 남양주 덕흥대원군묘 인근 구리시 동구릉에 선조의 묘인 목릉이 있으니 서로 왕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묘 인근에는 선조가 아버지를 위해 원찰로 지정한 흥국사가 있습니다.(신라 때에는 수락사, 선조 때에는 흥덕사로 불리다가 인조 때 흥국사로 개명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동안 대원군이라 불린 이들은 덕흥대원군을 시작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대원군,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등 모두 4명입니다.
‘두번 째 대원군’인 정원대원군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입니다. 그의 아들인 인조가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였고 친부의 무덤을 묘가 아닌 능으로 승격하여 장릉이라 칭하였습니다. 장릉은 김포시 풍무동에 있으며 곁에는 부인인 인헌왕후 구씨가 묻혀있습니다.
‘세번 째 대원군’인 전계대원군은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원군(정조의 이복동생)의 아들이며 철종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은언군이 홍국영과 함께 역모했다는 벽파의 무고에 따라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나자, 아버지 은언군과 함께 빈농으로서 불우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포천 대진대학교 옆에 묘가 있으며 첫번 째 부인 완안 부대부인과 합장하였습니다.
원래 전계대원군묘는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의 은언군묘 옆이었는데 1856년 포천의 현 위치로 이장하였습니다. 둘째 부인인 용성 부대부인 염씨묘는 전계대원군 합장묘의 동쪽 옆 구릉에 단독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마지막 대원군’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영조로부터 이어지는 왕가의 가계에 편입되어 왕위와 가까워졌습니다. 1863년 12월 철종이 사망하자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와 원한이 깊은 조대비는 이하응과 맺은 묵계대로 그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철종의 후사로 지명했습니다.(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비인 풍양 조씨 조대비와 안동 김씨 순원왕후의 갈등은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의 삶을 배우 신혜선이 코믹하게 역을 소화한 tvN드라마 ‘철인왕후’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2살 고종은 이렇게 그의 아버지 이하응의 노력으로 왕위에 올랐고 이하응은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이 되었습니다. 왕의 아버지로 왕이 즉위할 때 살아 있었던 사람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합니다. 흥선대원군묘는 원래 1898년 서울시 공덕동에서 1908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하면서 ‘흥원’으로 격상됐습니다. 그리고 1966년 현재의 위치인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로 옮겼습니다. 묘역은 2단입니다.
묘소 주변으로 돌담인 곡장(曲牆)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의 위세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원’은 경춘선 마석역 바로 앞에 있습니다. 선조와 철종 아버지 무덤은 ‘묘’, 고종의 아버지 무덤은 ‘원’, 인조의 아버지 무덤은 ‘릉’으로 지정되어 죽은 자의 공간도 이렇게 격이 틀리네요.
‘흥원’이 있는 같은 창현리에 모란터널을 사이에 두고 최고 권력자의 무덤과 전태일, 박종철 등 민주열사의 무덤들이 지근거리에 놓여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보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되고, 박종철 열사가 권위주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단초가 되듯, 공화정이 아닌 왕정 같이 권력을 휘두를 때 그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자와 무너뜨린 자가 한 마을에 공존한다는 것에서 살아있는 역사적 교훈을 생생하게 얻습니다.
dynasty – nasty: 역겨운(nasty) 짓을 하는 왕조(dynasty)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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