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2년에 런던에 세계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등장하였다. 하우스를 연 사람은 시칠리아 출신 파스쿠아 로제(Pasqua Rosee)였다. 그는 영국 상인 대니얼 에드워즈를 따라 터키에서 영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대니얼 에드워즈 집에서 커피를 여러 사람들에게 대접하면서 그 인기가 높아지자 이 터키 음료를 사업화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 머리를 그린 상표에 ‘터키인의 머리’라는 이름을 붙여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로제는 ‘커피 음료의 장점’을 기록한 전단지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는데, 커피를 최초로 접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했는지 흥미를 더해준다.
“커피라고 불리는 열매는 오직 아라비아 사막에서 자라는 아담한 나무에서 열린다. 열매를 화덕에 말려 가루로 만든 다음 샘물을 넣고 끓여 마신다. 커피는 소화를 도와주므로 아침뿐 아니라 오후 서너시쯤 마시면 아주 좋다. 커피는 정신을 명료하게 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화를 가라 앉히고 두통에 특효가 있으며 다량 분비되는 어떤 체액도 멈추게 하고 소모성 질환과 기침을 예방하거나 완화한다. 부종, 통풍, 괴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 임신한 여성들의 유산을 방지하는데도 효과가 만점이다.”
그리고 곧 일어날 산업혁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커피는 졸음을 방지하고 작업 수행 능력을 향상시킨다”라는 설명도 추후 게재했다. 가히 커피를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선전한 것이다. 커피가 소화를 돕고 두통을 완화시키고 정신을 맑게 한다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결핵, 괴혈병, 유산 등도 막아준다는 매우 과장된 문구를 넣어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문구는 많은 런던 시민들을 크게 자극했으며 그의 커피하우스는 하루 600잔 이상을 팔게 되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 소문은 금세 퍼져 런던 전역에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다. 채 10년이 안 되어 런던에는 83개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모두 남성 전용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남성만의 세계’가 된 커피하우스에서 소외된 여성들은 1674년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탄원(Woman's Petition Against coffee)’을 발표하고 ‘새로 유행하는 독하고 야만적인 커피라는 음료의 과용’을 비판하게 되었다.
1년 후 찰스 2세도 커피하우스 공격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커피가 나태함을 조장하고 선동적인 정치운동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가 사회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명명백백한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 수없이 생겨난 커피하우스가 나태하고 불만 가득한 사람들이 번번이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사악하고 위험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상인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합법적인 소명을 다하고 용무를 보며 보내야 할 시간을 커피하우스에서 빈둥빈둥 낭비하고 있다. 게다가 커피하우스에서 조작되는 온갖 악의적이고 수치스러운 거짓 소문들이 나라 밖까지 알려져 폐하의 권위에 먹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폐하께서는 앞으로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고 금지하는 게 바람직하고 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게 되었다.”
포고문이 발표되자 런던 시민들과 커피하우스 주인과 고객들은 격렬한 저항을 일으켰다. 결국 찰스 2세는 포고문을 선포한지 일주일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을 일으키게 되었다. 1700년대 초에는 런던에 무려 1,000곳이 넘는 커피하우스가 영업을 하게 되었고 영국 계몽주의 운동을 상업적, 예술적, 문화적으로 꽃피우는데 그 어떤 물리적 공간보다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700년대 이후의 커피하우스는 각자 나름대로 특화된 장소로 변화되기도 하였다. 익스체인지 앨리(Exchange Alley)에 군집한 커피하우스들은 주식시장 투자가들의 집합소였고, 웨스트 민스터에 있는 커피하우스들은 정치계 뒷공론과 여론몰이의 온상이 되었다. 도박장으로 변한 커피하우스도 생겨나게 되었고, 매춘의 소굴로 변한 커피하우스도 생겨났다. 어떤 커피하우스는 오로지 라틴어만으로 대화하는 곳으로 재탄생하였고, 연극 공연도 하고 공연 품평도 하는 곳도 생기게 되었다. 어떤 커피하우스는 기사와 평론을 쓰는 언론인의 사무실 역할을 하는 곳으로 발전하였고, 해운업자들의 집합장소였던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런던의 거대 보험회사 로이드(Lloyd)로 발전하기도 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는 아관파천 후 커피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고종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으며 최초의 카페는 1907년 일본인이 만든 남대문 다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최초의 카페는 1927년 인사동에 오픈한 ‘카카듀’라고 하며 영화감독 이경손이 설립하여 영화인들의 모임장소였다고 한다. 카카듀는 운영 미숙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폐점하였으나 이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을 차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후 커피는 다방을 거쳐 인스턴트 믹스커피 시대를 거친 후 1999년 스타벅스의 국내 상륙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지금은 톨사이즈의 테이크 아웃 잔을 들고 다니는 것이 도시인 젊은이의 상징처럼 되었다. 현대는 많은 이들에게 잠이 부족한 시대다. 카페인이 많은 커피를 절제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웃고 사는 생활 습관이 필요할 것이다.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