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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광군의 영광은 ‘榮光’이 아니고 ‘靈光’입니다. ‘신령스런 빛’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영광군에는 4대 종교의 성지(聖地)가 다 있습니다.
6.25 당시 순교자 77명이 숨진 영광 염산교회와 65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야월교회,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지인 원불교 영산성지, 인도 스님 마라난타가 도착해 백제불교를 최초로 전래한 법성포, 조선시대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신자를 추모하는 천주교순교기념관이 바로 그 곳입니다.
여기에 필자는 유교의 성지를 한 곳 추가하려 합니다. 바로 임진왜란 때 왜국에 끌려갔다 그 곳에 유학을 전파하고 돌아온 수은(睡隱) 강항(姜沆)선생(1567-1618)을 모신 내산서원(內山書院)입니다.
강항 선생은 조선 전기 대문장가 강희맹의 5세손입니다. 형조좌랑이었던 강항 선생은 정유재란이 발생했을 때 남원성 군량 조달을 맡고 있었는데, 성이 함락되자 의병 봉기를 독려했습니다. 왜군의 수적인 위세에 눌려 이도 여의치 않게 되자 식솔들을 영광 앞바다(염산면 논잠포. 지금은 간척되어 육지가 됨)에서 배에 태워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에게 가려 했으나 1597년 9월23일 왜수군에게 나포됩니다.
강항 선생은 왜군에게 잡히자마자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려 했으나 왜군에 의해 저지됩니다.
강항 선생은 쓰시마섬과 이키섬 등을 거쳐 시코쿠 지방 이요의 오즈(大洲)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오즈에서 강항 선생은 조선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오즈성주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함)가 강항 선생의 유학적 자질을 높이 사서 처형 직전에 그를 극적으로 살려줍니다.(도스토옙스키가 처형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이 떠오릅니다.)
그후 강항 선생은 교토 출신의 후지와라 세이카와 교류하게 되고 그는 강항의 가르침으로 일본의 대유학자가 됩니다. 그가 불교 승려의 지위를 버리고 온전한 유학자로 다시 태어나는 데 강황 선생이 결정적 기여를 한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 에히메현 오즈시 중심가 시민회관 앞에는 1990년에 건립된 ‘홍유강항현창비’(鴻儒姜沆顯彰碑)가 서 있습니다. 1600년 4월 강항 선생은 가솔과 함께 교토를 떠나 5월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산을 통해 귀국하여 한양으로 상경, 선조(宣祖)를 알현하고 왜국 생활의 실상과 행적을 보고하고는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스스로 부끄러운 죄인이라 칭하며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1602년 조선 정부는 그에게 관직을 제수했으나 받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관직을 거절했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그가 집필한 책이 ‘건차록(巾車錄)’입니다. ‘건차’는 죄인을 태우는 수레이니 적군에 사로잡혀 끌려가 생명을 부지한 자신을 죄인으로 자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항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제자들이 책을 펴내면서, 스승을 중국 한나라 무제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왕의 회유를 거부하고 양을 치는 노역을 하다가 19년 만에 돌아온 소무(蘇武)의 충절에 견주어 제목을 ‘간양록(看羊錄)’으로 바꿨습니다.
아무도 없는 흐린 어스름, 차디찬 초겨울비 내리는 서원 뒤 그의 무덤 앞에서 조용필의 절창 ‘간양록’을 피토하는 심정으로 불러봅니다.
‘이국 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임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영광군립도서관 옆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영광군수가 고을에 없었어도 도망가지 않고 용감히 왜군에 맞서 싸워 목숨을 바친 의병장 이응종(李應種)을 비롯한 55인의 애국 충정 정신을 기리는 ‘임진수성사’(壬辰守城祠)가 있습니다. 이 곳 또한 ‘신령스런 빛’이 서린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국충절의 드높은 정신을 선양한 분들을 추념하는 마음으로 불갑사 무량수전에서 108배를 올렸습니다. 추적추적 초겨울비 내리는 불갑사 하산길 양 옆에 떨어진 꽃무릇 상사화가 가로등 밑에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 곳 또한 성지가 아닐런지요?
shrine-in: 성지(shrine)는 우리 마음 속에(in)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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