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60만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남북전쟁은 남부에서 노예제도를 쓸어버렸지만 북부가 쌓아온 지적 문화의 뿌리도 뽑혀나갔다. 미국은 미국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국가 질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872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비공식 토론 모임이 열렸다. 여기 참석한 사람은 네 사람이었다.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진보적인 연방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들 홈스, 홈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저명한 소설가 헨리 윌리엄스의 형인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천재 논리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기호학의 창시자 찰스 샌더스 퍼스,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존 듀이가 그들이었다.
그들이 모인 기간은 9개월 정도였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모임을 메타 피지컬 클럽(Meta physical club)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핵심적인 논쟁 제목은 ‘왜 전쟁을 해야만 했나?’였다. 그들이 찾아낸 결과는 ‘신념이 극단화하면 전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이 신념의 극단화에 따른 비참한 전쟁을 치른 바 있고 작금의 현실도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극단적 신념들이 매우 우려스러울 정도로 극단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메타 피지컬 클럽은 이러한 신념의 충돌을 중재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드디어 세상에 그 체계를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실용주의(pragmatism)다. 미국은 이 실용주의를 교육, 민주주의, 자유, 정의, 포용에 관한 미국인의 관점 더 나아가 이들의 생활방식, 교육방식,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는 방식,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방식,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면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날 위대한 미국을 만든 근본정신이 청교도 정신이라면 그들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실용주의라고 보면 과히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실용주의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에서 양자택일의 강요는 폭력이다. 신념의 극대화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사상의 생존은 그것의 불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응성에 있다. 관용과 차이의 여지를 허용하는 사회를 만들어라. 나의 진리와 다른 진리에 대해 활짝 열려 있으라.”
이 실용주의는 신념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메타 피지컬 클럽이 고안해낸 특별 처방이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적과 처방이기도 한 것 같아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쓸데없는 사상과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과 실용을 우선시해야 우리의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죽의 장막 속에서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이던 중국 인민들의 삶을 급속도로 향상시킨 중국의 덩샤오핑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이 실용주의 일부를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념이나 원칙에서 실용주의를 온전히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중시하고 정치적 신념을 많이 희석시키는 면에서는 이 실용주의를 상당히 적용한 면이 있다고 하겠다. 일본도 메이지유신 이후 실용주의 노선을 일찍이 받아들인 결과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철저한 실사구시를 지향하며 실용주의를 적용하여야 하는데 정치적 상황과 노사 간 갈등은 이를 허용하지 못하게 막는 측면이 강하지 않나 생각된다. 사상과 이념은 세월이 지나면 쇠퇴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올바른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때다.
우리나라를 새롭게 일으켜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실용주의가 꼭 필요한 시대다. 극단적 신념의 대립 결과는 전쟁임을 명심하자. 웃는 사람은 보수, 진보 중에서도 실용적 노선을 걷는 사람이다.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