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찾아왔다. 2022년은 권위와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호랑이는 복을 기원하는 상징이었고, 나와 집안을 수호하고 성공을 보장하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호랑이는 상상의 존재이자 물의 신 용에 맞서는 존재였고, 신성한 신령과 함께하는 호랑이가 꿈에 나오는 날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호랑이 태몽을 꾸고 태어나는 아이는 사회의 큰 인물이 된다고 기대한다.
이렇게 신의 동물 ‘신수(神獸)’였던 호랑이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막강한 수호신이 되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현재, 으르릉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상대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용맹의 수호신이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우리 역사 속 비운의 호랑이
십이지 동물 중에서 세 번째, 60갑자에서 서른세 번째의 임인년을 두고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십간(十干)의 아홉 번째 임(壬)이 열 번째 계(癸)와 함께 물의 기운을 상징하고, 오방색 중 검은색을 의미하는 북쪽 방향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흑호는 우리 설화에 살짝 등장하기는 하지만, 학계에 따르면 실제 흑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존재했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에 호랑이를 검색하면 727회가 나온다. <태조실록>에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흥국리 사람이 쏘아 죽이다’, <태종실록>에 ‘밤에 호랑이가 한양의 근정전 뜰에 들어오다’, <고종실록>에 ‘호랑이를 잡은 장졸에게 군영에서 시상하게 하였다’ 등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는 근거가 된다.
지금도 전국에 호랑이와 관련한 지명이 389개나 된다고 한다. 부산의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이 있는데, 범일동 안창마을은 호랑이 마을로도 불렸고, 안창마을 앞 하천은 호계천이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복거리의 ‘복호리’, 경기 가평군 호명산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호랑이굴’, 전남 고흥군 과역면에는 엎드린 호랑이 형세의 ‘복호산’, 제주의 ‘범섬’이 있다.
경북 포항시 ‘호미곶’은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꼬리 부분이고, 전북 임실군 ‘호암리’, 경남 의령군 한우산에서는 호랑이를 ‘마을을 지키는 신성한 영물’로 여긴다. 충남 아산시 ‘호산리’는 범처럼 생긴 뒷산과 함께 밖범이, 안범이, 밤이고개, 새터범이 등의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그렇게 많던 호랑이는 1925년 일제강점기에 마지막 호랑이를 기록하고, 영원히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호랑이는 우리나라 자체였고,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민족에게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최상위가 되는 최고의 권위와 용맹을 지닌 존재가 한반도 전역을 누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호랑이에 집착하며 멸종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지키는 나라, 호랑이의 나라였다.
‘까치 호랑이’.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익살스럽고 때로는 바보 같은!
호랑이는 강력한 수호신이 되기도 한다. 경복궁 근정전 기단 서쪽 계단 기둥에 백호가 큰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데 청룡, 주작, 현무와 더불어 사신 중 하나인 백호는 궁궐과 하늘의 서쪽을 관장하고 지키는 신령이다. 유교 국가에서조차도 강력하게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수호신이었던 호랑이는 설화와 민화 속에서 익살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그냥 잡아먹어도 될 것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고 다가와서는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기까지 한다.
“저를 살리시려면 썩은 동아줄을 주시고, 저를 죽이시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라고 잘못 말하는 바람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붉은 수수대의 이유까지 제공한다. 사람의 말을 오해하는 바람에 등에 탄 곶감을 떨어뜨리려고 꽁지 빠지게 달려가는 호랑이의 처절한 모습은 정말 웃기다. 새끼 99마리에게 골짜기 하나씩 나눠준 한라산 호랑이는 자신이 살 범섬으로 가다가 새끼들을 키우느라 허기져서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이 얼마나 애절한 우리의 모성애인가.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익살스런 표정은 전혀 감추지 않는다. 마치 몸집만 커다란 고양이인가 하고 놀림이라도 받을 것 같다. 해학과 풍자를 좋아하는 사람들, 격하고 고된 삶의 노동까지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키는 오랜 민족성이 그림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창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연좌제
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린다. 사람을 몇 명이나 잡아먹는가에 따라 호랑이 겨드랑이에 붙은 창귀, 굴각이 되고, 광대뼈에 붙은 이올이 되고, 턱에 붙은 육혼이 되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죄다 알려준다. 그리고는 호랑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인척 순으로 다음 희생자를 찾아간다. 그래서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사돈의 팔촌하고도 혼사를 맺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설화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의 산하 중 큰 산을 지키는 산신을 창귀를 만드는 하찮은 요괴 취급하는 것은 정말 당치 않다. 게다가 가족까지 줄줄이 창귀로 만든다고 하니, 정치사상 문제로 엮인 연좌제를 떠올리게 한다. 참으로 억울한 사연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을 품은 호랑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런 호랑이가 멸종위기종이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몸집이 크고 용맹한 백두산 호랑이,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 저리게 하는 으르릉거림으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환란을 모두 물리쳐주기를 바란다.
‘십이지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1월4일부터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되는 이영철 작가의 ‘행복 품은 호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