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불황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김가다의 마누라는 거의 1년 내내 고객들의 잦은 발걸음에 피크일 때는 정말 눈코뜰새 없을만큼 바쁘다. 그래도 남들이 다들 즐겁게 떠나는 여름휴가 며칠마저 못챙긴다면 삶이 너무 팍팍하고 시드럭 부드럭 늙어가는 판에 하염없이 흐르는 세월이 너무도 아쉽다 싶어 김가다 부부는 부랴부랴 배낭에다 사나흘쯤 먹고 쓸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승용차 트렁크에 챙겨넣고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김가다는 운전을 할 줄 모르니 아내가 내내 운전대를 잡아야 했지만 아내 역시 모처럼 일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 버리고 남편과 단둘이서 여행을 떠나는 일탈의 기쁨으로 어린아이처럼 새실스러웠다. 그곳이 진부령 어딘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그 울울창창 짙푸른 소나무숲 아래로 벽계수가 질리도록 투명하게 굽이치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통나무로 예쁘게 지은 민박집 한 채가 아담하게 엎드려 있었다. 김가다 마누라는 어린애처럼 손뼉을 딱 치면서 김가다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야! 아빠. 오늘 우리 저 예쁜 민박집에서 묵고 내일 동해바다로 떠나는 게 어때요?”
김가다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그리며 맞장구를 쳤다.
“야! 진짜 끝내주는 민박집이구만. 그래, 저 집에서 자고 내일 동해바다로 달리자구.”
두 사람은 민박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주인에게 하룻밤 숙박비를 지불한 뒤 조용한 쪽에 예쁜 창문이 활짝 웃고 있는 방을 잡았다. 그리고 현관 앞 조그만 공터에다 돗자리를 펼쳐놓고 엊저녁에 미리 준비해둔 양념 돼지고기를 석쇠 위에다 굽기 시작했다. 맛이 까무라칠 정도로 그만이었다. 김가다의 마누라는 음식솜씨도 뛰어났다.
“아흐! 양념을 어찌나 맛있게 했는지 맛이 죽여주누만!”
그때였다. 한쌍의 중년부부가 김가다네가 잡은 방 바로 옆방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나서고 있었다. 순간 김가다는 젓가락으로 집어올린 돼지고기를 공중에다 붙들어 매어놓은 채로 입을 딱 벌리고 다물줄을 몰랐다.
“허걱! 이, 이게 누구야. 박 집사 아냐!”
그렇게 깨어지듯 소리치는 김가다를 발견하고 박집사가 턱을 덜덜 떨면서 소리쳤다.
“허걱! 아니 형님이 어쩐 일로 이 곳엘!”
“박 집사, 저기 도망치는 여자는 대체 누구야. 애인 데리구 온거얏?”
“허걱! 그, 그게 아니구 그냥 우연히 만난 여잔데...여, 여기 민박집이 하도 좋다고 하길래 그, 그냥 구경삼아 와봤는데 허, 허걱.”
“아니 이 사람아, 왜 말은 안하고 노상 허걱대고만 있는거야? 얼굴이 똥처럼 썩어갖고!”
그때 마누라가 김가다의 옆구리를 아프도록 꼬집으면서 아무 것도 아닌척 말했다.
“애인이랑 같이 왔으면 어서 가보세요. 아님 같이 앉아 고기를 드시든지요.”
마누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 집사는 허둥지둥 앞서 내달리는 여자의 꽁무니를 쫒아 두 사람의 시야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두 사람은 뭔가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잠시 말을 잊었다. 마누라가 핸드폰을 열더니 어딘가로 다이얼을 누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양 집사님 맞아요? 나 이영휘야. 오늘 영감이랑 단둘이서 강원도의 예쁜 통나무 집 앞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중야. 근데 피서 안가? 박 집사님이랑 같이 여기 한번 와봐. 정말 너무 좋구만. 박 집사님은 요즘도 바빠? 뭐라구? 기도원에 금식하러 갔다구?”
그날 이후 김가다 부부는 박 집사를 그 통나무 민박집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박 집사의 아내가 그 사실을 알면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나자빠질 것이었다.
“그 따위로 하고 사니까 예수쟁이들이 똥감태기로 욕을 먹는거지. 애그, 딱두허지 쯔쯔쯔...그나저나 그 여자 어디서 많이 본 여잔데 말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