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첫 기능문화재 김정열(53) 나전칠기(나전)장은 언어로 전부 표현할 수 없는 나전칠기의 영롱한 빛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걸었다.
1996년에 대한민국 명장 칠기 제96-19호, 9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경기 제24호 나전칠기(나전)장에 지정된 그의 삶에는 한국 나전칠기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
한때 법조계를 꿈꿨다는 김씨. 가정형편 상 야간중학이라도 가기 위해 경남 통영에 있는 외가로 내려갔다. 그러나 당시 나전칠기 안창덕 선생과 어머니 사이의 약조로 자신도 모르게 나전칠기를 시작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는다. 아무리 어머니의 권유라 하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하지 못할 법. 그렇게 40여년이 흘렀고, 이제 나전칠기는 어머님이 물려준 천직이 됐다.
“1년 만들어야 간신히 한두 점 나옵니다. 시·도에서 지원 나오는 월 80만원 가지고는 솔직히 먹고 살기는 힘든 일입니다.”
김씨가 추구하는 작품의 테마는 공간미술 개념이다. 검정 칠 바탕에 소수의 나전문양으로 공간과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것이다.
여백의 미는 한국 공예품들이 주로 추구하는 무한의 아름다움이다. 눈에 가득 차게, 장식을 화려하게 깔아버리는 것보다 여백을 살리는 것은 상상력과 표현력, 정신 수양의 깊이를 더욱 요구한다.
지금 아들도 경민대를 졸업하면 전수자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부인인 이상명(54) 서정대 교수도 전통다도를 전공했다.
나전칠기는 전통공예 부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응용미술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김정열씨가 제작한 별산대놀이 캐릭터의 펜던트나 양주시청 로비의 벽화가 그 좋은 예이다.
92년 양주별산대 탈을 상감 펜던트로 디자인하여 92년 전국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김씨가 자신의 역작으로 꼽는 시청로비의 타일 벽화는 나전 방식으로 3차원을 표현한 최초 작품이다. 타일 하나하나에 제작자가 혼을 새겼다. 지역의 특색과 연결고리를 가진 작품을 만들고, 작품으로 지역을 알리려 하지만 아직 주변의 인식은 부족하다.
나전칠기의 출현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나라 때 성행하였으며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전해져 중국 4천년, 한국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각국의 문화로 발전했다. 중국은 조칠로 두껍게 칠해서 조각하는 것이 성행했다면 한국은 나전기법, 일본은 사회기법(옻칠로 사실처럼 그리는 것)이 발달했다.
그러나 중국의 나전칠기는 고가화 되어 일반화를 이루지 못해 쇠퇴해가고 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려시대 정교한 품격과 예술성을 자랑했지만 조선시대에 나전의 문양이 사군자나 화조(花鳥) 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일반화와 공업화의 물결 속에 쇠퇴해갔다.
30년 전에 전국 수천개였던 작업장은 지금 백여곳으로 줄었으며 그중에서 전통 작업은 2~30곳에 불과하다고 김정열씨는 털어놓는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대에서 나전칠기의 전통이 끝날 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전수회관 같은 공간이 아쉬운 현실이다.
“나사모, ‘나전칠기를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다 대중화, 일반화하여 자기가 작업하고 싶을 때 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시작단계로 3명이 참가하고 있지만 덕계동에 있는 18평 작업장으로는 부족해요. 양주시에 전수회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김정열 나전칠기(나전)장은 현재 양주시 덕계동에 살고 있다.
수상 및 활동경력(요약)
1968년 경남 통영시 문화동 261번지 나전칠기 입문
제 22회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대상수상
제 28회 전국 기능경기대회(나전칠기) 금메달 수상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제 제24호 나전칠기(나전)장 지정
한국전통공예 10大작가 및 10大작가전 추진위원장
제1회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작가
나전칠기 벽화제작(양주시청 소장)
한국 토지공사 박물관 문화대학 특강
경기도 공예품 대전 심사위원
경기도 기능 경기대회(나전칠기) 심사위원장
전국 기능경기대회(나전칠기) 심사위원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나전칠기) 심사위원
작품소장
1996년 국립민속박물관(나전관모함)
2001년 양주시청사(나전벽화)
2002년 日本 산업기술 종합연구소 (나전탈 장신구)
칠하고 말리는 과정 수없이 반복해야
▶나전칠기 제작과정
나전칠기 전통작품은 소품이라도 제작기간이 6~7개월 이상 걸린다. 제작과정은 그 용도와 형태에 따라 무궁무진하여 한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다.
가볍게 요약하면 우선 소목장이 ‘백골’이라는 틀을 만든다. 그 백골에 옻칠, 살아있는 칠이라는 생칠을 하고 한달 정도 말린 후 삼배, 모시천을 발라주고 다시 옻과 찹쌀풀을 발라주는 호칠을 하여 나무에 스며들게 한다.
그 뒤 생옻, 황토분, 참쌀풀을 발라주는 골회, 천 눈매꿈을 위해 숯가루와 옻, 찹쌀풀을 2~3회 발라주고 뒤에 다시 골회 2~3회, 숯돌로 갈아주기, 맞춤질, 옻칠 2~3회, 사포질로 이어지는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 다음에야 자개를 붙인다.
도안을 따라 자개를 붙이는 방법에는 주름질과 끊음질 등 두가지 방법이 있다. 주름질은 실톱, 송곳으로 재료인 조개를 오려내는 것이며 끊음질은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서 상사칼로 끊어 장식해 주는 것이다.
전통 나전칠기의 매력은 여백의 미와 더불어 조개껍질에서 발현되는 형언할 수 없는 색채이다. 발달한 과학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찬란한 진주의 빛을 이은 자개무늬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빛으로, 각도에 따라 변하는 색상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거기에 삼족오, 거북, 봉황 등 문양과 이음쇠 등에 새겨진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데서 또 다른 무궁무진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문양 하나에도 전통의 화려함과 사상이 스며있다.
우리의 혼과 민족의 의미를 담은 예술, 나전칠기. 앞으로 후손에게 순탄하게 전해지려면 지금 더 큰 관심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