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할아버지의 낡은 집은 양주시 덕정동 하천가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60년대에 만들었다는 이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노부부와 두 손주들의 귀중한 안식처이다.
김 할아버지는 전기장판 위에 앉아 희미한 왼쪽 눈으로 기자를 본다. 다른 한 눈은 빛을 잃은 지 10년째.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누군가 던진 벽돌에 맞아 그만 시각장애 3급 1호이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팔뚝에는 솜이 칭칭 감겨 있다.
“월·수·금마다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 콩팥이 안 좋아서 피를 기계로 갈아줘야 해.”
말하는 와중에도 계속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몇년 전 풍을 맞은 할머니도 언어장애와 노환으로 힘들긴 마찬가지다. 벽에는 아이들의 책상이 나란히 붙어 있다.
“애 어미가 떠나고 아들 혼자 애들을 키우다 3년 전에 뇌출혈로 죽었어.”
그나마 중3, 중1인 아이들은 무료교육과 급식지원을 받고 있고 어느 정도의 병원비도 지원받는다지만 돈 들어갈 곳은 많다. 기름값이 무서워 보일러 땔 엄두를 못내 전기장판으로 버틴다. 거실과 부엌에는 냉기가 흐른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대로 먹고 살면서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는 열심히 다녀. 교복, 점심 공짜로 나오니 고맙지. 집 세금 내려고 돈 모으는 게 일이야.”
일주일에 3번 투석 받아야 하는 김 할아버지의 가장 큰 고통은 교통문제다. 장애인연합회 등에서 차량으로 데려다 줄 때는 다행이지만 차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택시를 타야 한다. 병원까지 1만5천원이 넘는 차비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장애인 택시는 아침에 못 다니고, 투석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차량이 안나오면 힘들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할아버지가 흥분하며 입이 떨린다. 할머니는 빛이 들어오는 유리문만 바라보고 있다.
“사고 났을 때도 아들이 있어서 견뎌냈지. 하지만 아들이 세상 떠난 후에는 내가 죽으려고 굶고, 혀도 깨물고 별짓 다했어. 하지만 죽지 않더라고. 아직 안사람이랑 애들 두고 가지 말라나 봐.”
말하면서 할아버지는 구석에 놓인 컴퓨터를 바라본다. 오래된 컴퓨터는 거의 골동품이다.
“애들 쓰라고 컴퓨터를 받았는데…너무 낡아서 쓰지를 못한데. 애들도 컴퓨터 하고 싶을 텐데.”
하늘 위로 무심한 저녁노을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