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교육기관에서 제자를 가르치지만 본인은 가르친 대로 행하지 아니한다. 즉 말로만 가르치고 몸으로는 실천하지 아니한다. 그러니 배운 자들도 교문만 나서면 “언제 배웠던가?” 언행이 달라지고, 우리의 지도급 인사들 또한 어느 한 사람도 기본을 지키지 아니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예의는 곧 질서다. 우리는 교육기관에서 가장 먼저 공수(拱手)하고 인사하는 것이라고 배웠고 또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먼저 공수 인사하라고 가르쳤다. 아들, 딸, 손자가 유아원 또는 유치원에 다녀와 공수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 잘한다고 칭찬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공수하고 인사하는 것이 가장 공손하고 단아한 인사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유아원부터 대학교까지 수업을 시작할 때 ‘공수! 인사!’라는 구령으로 일괄 인사를 했다. 이것이 교육기관 안에서만 해야 하는 인사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행사장 등에서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먼저 이러한 사항을 지켜간다면 사람들이 공경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그리하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인사를 그렇게 공손하게 하고 지내면 자연스럽게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예절이 살아날 것이다. 아마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호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요즈음 혼인을 위한 청첩 문화 또한 어른들이 제 역할을 아니한다. 결혼을 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다. 배필에 대한 선택권은 자손에게 있다 하더라도 부모가 혼주인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청첩장을 보면 결혼 당사자가 각종 미사 용어를 총동원하여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니 오셔서 축하해 달라’는 내용이 보편적이다. 청첩받은 사람이 결혼하는 두 사람을 보기를 했나? 알기를 하나? 다만 그의 부모를 안다는 이유에서 축의금을 들고 예식장에 가는 일이 거의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쓴 청첩은 결혼 당사자의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내면 타당하다고 하겠다. 내용문은 본인들이 시집 장가가니 오셔서 축하해 달라고 작성하고, 겉봉투만 부모 명의로 하여 청첩장을 부모 지인들에게 보낸다. 보편적으로 부모의 친구와 지인들은 결혼 당사자를 알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부모의 아들과 딸이라니까 축하하는 뜻으로 축의금을 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를 보고 결혼식장에 가는 것이지 결혼 당사자를 보고 가는 사람은 예식장 하객의 단 10%도 되지 않는다.
그러하다면 당연히 부모가 ‘우리 아들(딸)이 성장하여 아름답고 착한 배필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니 오셔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의 청첩장을 작성하여 보내야 도리에 맞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것은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자식에게 위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다. 자식은 자기가 결혼하는 것이니까 본인도 모르게 부모를 무시하는 처사로 불효를 하는 것이다. 이 또한 부모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고, 아들딸은 부모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한 행위로 생각된다. 따라서 청첩장은 혼주(부모)가 내용문을 작성하는 것이 바른 예의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꼴불견인 것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이 가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도 아무도 고치라고 말해 주지 않는다. 연애 시절처럼 남편을 오빠라고 부를 때 어른들이 ‘결혼했으니 이제부터는 호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일러주기만 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영특해서 바로 수정할 것이다.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인 것 같다.
밥상머리에서 남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아들딸을 내가 낳았어도 조카가 되는 것인가? 이것은 가족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정에는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해야만 대우도 받고 모든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만 바로잡아도 우리 사회는 기본질서가 유지되고 아름다움이 넘쳐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