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상남도 통영에 다녀왔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멸치회가 맛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케이블카를 타보라고 한 친구도 있었다. 대한민국 끝자락에 있는 항구도시 통영은 바다가 땅에 안겨 있는 듯 정감어린 곳이었다. 멸치회는 정말 맛있었고 통영이 한국의 나폴리가 아니라 나폴리가 한국의 통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게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물해준 곳이기도 했다. 통영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푸른 다도해, 점점이 흩어진 섬들, 섬들 사이사이로 구비치는 바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한산대첩의 바다가 내 발밑에서 장엄하게 흐르고 있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감동적으로 시청했고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아들 면을 잃고 밤에 혼자 우는 구절에서 따라 울기도 했었다.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면서 별로 우는 편이 아닌데 그 땐 왜 그리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한산대첩이니 명량대첩이니 달달 외워야 할 때 이순신 장군은 단순한 위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드라마와 책을 통해 감정이입이 되면서 이순신 장군은 내 땅과 내 동족들을 열렬히 사랑하였던 한 명의 보훈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통영 케이블카에서 몇 백년 전, 그 분이 고뇌하며 내려다봤을 바다, 목숨 걸고 싸웠던 그 바다를 내려다보며, 가슴이 뭉클하였다. 이 땅이 피로 물들고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들이 힘없이 쓰러져 갈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애통하였을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긴칼 움켜쥐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애끓이며 울었을 그 절절함이 시간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 한 분이 국가와 후손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그 때 이순신 장군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산대첩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장군을 생각하고 또 저 검푸른 바다에서 말없이 스러져간 이름 없는 병사들을 생각한다. 가족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병사들, 거대한 적군과 쏟아지는 화살, 넘실대는 파도 속에서 나라와 가족을 위하여 싸우고 스러지고 꺼져갔을 분들을 생각한다.
그 분들을 생각하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 마음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뵙는 국가유공자들, 그 분들이 싸웠던 역사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분들과 그 가족들이 받았을 고통과 슬픔, 기다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분들도 나라와 가족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며 나아갔고 싸웠으며 고통받으셨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싸우고 희생하셨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하면 잘 갚을 수 있을지, 그 분들께 어떤 힘이 되 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내게 오늘을 만들어주신 분들을 위하여 일하는 내 직업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있는 일인가를 생각한다.
놀러갔던 곳 통영에서 이렇게 내 일터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순신장군은 책 속의 위인이 아니라 보훈가족이시다. 한때, 통영 앞바다에 수많은 보훈가족이 계셨었다. 내 일터에서 많은 보훈가족을 만난다. 인사 잘하고 잘 도와드리고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 오늘의 우리 나라, 오늘의 나, 오늘의 우리 가족이 있도록 해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