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미정상회담이 끝이 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 강화를 통해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해야 한다는 대북강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개성공단 폐쇄의 뉘앙스까지 전달했다. 또한, 미국이 핵우산이나 재래식 무기 전력을 제공해 위협을 제거한다는 ‘확장억지’ 개념을 명시화했다.
미일중러, 불가근불가원 외교 필요
이와 같은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이 정책기조가 그대로 간다면, 지난 10년 어렵게 이루어 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사실상 끝이 나고, 대결과 냉전체제 한반도로의 회귀가 명약관화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북핵해결에 있어 우리 정부의 역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지난 100년 역사를 보자. 조선 역사 이전부터도 그랬고, 일제강점기나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이나 똑같다. 지리적 위치의 특성상 우리는 미·일·중·러 4대 강국과 지속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이 상황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주변 4대 강국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적절하게 잘 조율해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남북관계 발전이 우리의 국제적 입지 넓히는 것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간 ‘포용정책’과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 프로세스’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해결에 유용한 정책과 수단이었다. 지난 10년은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낸 레버리지를 적절히 활용하여, 모처럼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문제를 풀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현 정부는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며 대북 제재와 압박에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자세다. 마치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데자뷰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냉전질서의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에 기대어 핵우산 약속받고, 안보 약속받는 20세기에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의 생존논리였다.
미국에 기대는 안보, 21세기 안보환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
아시다시피, 지금은 21세기다. 지금의 안보환경은 각국이 국익을 위해서라면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변화무쌍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상황에 있다. 냉전시대와 같이 미국, 소련 양국가 중 한 곳에 기대어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전통적 우방인 한미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무시하고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21세기 안보환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외교안보 관계는 남북, 북미 등과 같이 양국간의 관계가 아니라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국가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전체적인 역학관계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외교안보 전략이 쏟아지게 된다.
당장,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열자는 제의가 그렇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조율없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터뜨려버린 5자회담은 결국,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 정상들의 6자회담 지지로 궁색한 처지가 돼버렸다.
현 정부를 보면, 각국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미·일·중·러가 종국에 6자회담을 고수한다면 우리의 입지는 어떻게 될지는 염두에 없는 듯하다.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의 핑계와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당사국인 북한이 없는 회담이 북핵해결에 얼마나 효율적일지 매우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미숙한 외교적 처신인가.
전쟁예방이 최우선, 포용정책의 전제는 튼튼한 안보
현재, 최근 그 어느 시기보다 국지전이나 NLL 충돌과 같은 한반도 전쟁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처럼 현 정부 들어 1년 6개월이 지난 이 짧은 시간에 지난 10년 쌓아올린 평화공존의 남북관계는 형태조차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7대 대선 이전부터 ‘전쟁불사’라는 말들이 현 여권 인사들의 입에 올려지더니,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핵보유’, ‘핵주권’이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쏟아지고 있다.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생각보다는 도발하면 끝장을 보겠다는 무모하고 폭력적인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오히려 ‘전쟁쯤이야’ 라는 안일한 인식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대북포용정책이 현재의 안보위기를 불러왔다고 책임전가를 하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에게 전쟁불감증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수도 없이 강조한 바 있지만, 포용정책의 첫 번째 전제는 강력하고 튼튼한 안보태세였다. 그에 따라 지난 99년 서해교전에서 북의 함정을 격침시킨 바 있고, 이는 6.25 이후 수십차례에 걸쳐 도발했던 북에 대한 첫 번째 응징이었다. 틈만나면 안보를 외치던 군사정권에서도 이러한 응징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안보를 누가 중시했는지를 살펴보려면 제2 롯데월드 초고층 빌딩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시도하고자 했으나 안보상의 문제로 포기했던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현 정부는 기어이 밀어붙이고 말았다. 안보를 목청껏 외치던 사람들의 표리부동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전쟁 걱정 없었던 지난 10년
지난 10년 안보를 남북관계에서 국민에게 가장 와닿았고, 정부가 큰 자부심을 갖는 것 중에 하나가 그 시기 10년 동안 우리 국민이 전쟁에 대한 걱정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을 자초하는, 용납할 수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외교적 지혜를 발휘하여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의 최선의 자세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북정책의 최우선은 평화이며, 공존과 번영이다. 이를 위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와 10.4 선언의 정신을 존중하고 이행을 즉각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대북제재와 압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해결방법 모색을 통해 국민을 전쟁의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대북정책의 전면적 전환이 남북관계를 살리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평화가 곧 안보요, 경제다.
2009년 6월 19일 국회부의장 문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