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시 호원2동 한 구석. 손님이 온다며 하춘자(67)씨는 호박을 다듬고 있었다.
“서울 마장동이 고향이었지. 오빠 둘, 동생 넷과 살다가 66년도에 시집 가서 3년 살았는데 그만 척추가 마비돼 눕고 말았어.”
여성의 권리가 희미하던 시대. 시댁은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시댁 근처에 방 하나 얻고 버텼다. 뜻밖에 병이 나았지만 이미 남편은 새장가를 가버린 뒤였다.
76년에 재혼했다. 그러나 자식복은 없었다. 조카의 아들을 데려와 키웠지만 결혼하여 분가시킨 뒤 남편도 9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이제 하춘자씨는 혼자다.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지만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
살면서 피곤한 일을 많이 당해서인지 시신경이 말라버려 눈 한쪽이 안 보인다. 고혈압, 당뇨도 겹쳐 일을 할 때 더 힘들다. 일주일에 한두번 나가는 식모일로 20여만원을 벌지만 서울 대치동까지 2시간씩 오가면서 해오던 일도 11월이면 끝난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주변의 도움으로 신청해 경로수당 4만5천원에 생계주거수당 7만8천580원을 받는다. 겨울도 다가오는 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다른 일자리라도 찾아야지. 가까운 데 편한 일자리 있으면 좋겠어.”
그러나 하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우리 아버지 말처럼 6.25 때도 살아남았는데 어디 가서 못 살겠어? 시와 동에서 도와주니까 숨구멍이 트여.”
예전에는 약값이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국가에서 도와줘 혈압, 당뇨약도 공짜라 너무 고맙단다. 물리치료까지 공짜로 해주니 미안할 정도라고.
“다만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지. 공부해도 취직이 안 되고….”
분가시킨 조카의 아들이 IMF 때 집 날리고 사글세로 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한다.
“애가 되는 일이 없어서 내가 보태줄 형편이야. 젊은 사람들이 일해야 하는데 노인네가 너무 많아. 나부터 죽어야지 젊은 사람들이 살만해질까. 사는 게 미안해.”
아프고 부족하고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하춘자씨. 그러나 마음 깊숙이 까맣게 탄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