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2월, 아프리카를 탐험하던 나이 30살의 청년 리빙스턴은 함께 있던 원주민을 구하기 위해 상처입은 사자와 격투를 하게 되었다. 왼쪽 어깨와 팔 부위를 사자에게 물린 채 바닥으로 질질 끌려가던 리빙스턴은 사자의 이빨이 더욱 깊게 박혀오면서 온 몸이 무섭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상박골이 쪼개지고 톱니바퀴 모양으로 찢겨진 상처에서는 피가 솟구쳐 올랐다. 리빙스턴과 함께 있던 원주민 개종자 메발위가 급히 라이플을 들어 두 발을 쏘아대자 먹이를 포기하고 달아나던 사자는 얼마 못 가 쓰러지고 말았다. 부러지고 으깨어진 뼈와 심한 출혈 외에도 세균 감염으로 고름이 심하게 흘러나오는 고통을 두 달 넘게 이겨내면서 리빙스턴은 사자의 입에 물려 끌려갈 당시를 곰곰히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살아났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사자 이빨에 물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 그의 마음은 너무나도 평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것은 분명 신이 주시는 기적 같은 일로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사자와 마주했을 때 느꼈던 신비로운 평화를 1857년 간행된 자전서 ‘선교 여행과 남아프리카 탐험’이란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내 귓바퀴 속으로 천둥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사자는 마치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나를 계속 좌우로 흔들어댔다. 사자가 휘두른 첫 발톱에 일격을 당한 나는 그 충격으로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정도로 나의 의식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일말의 고통이나 공포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 이빨로 내 팔을 떼어먹고 또다른 팔을 떼어 먹고 차츰 차츰 나를 먹어가겠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마취를 한 환자가 수술 과정을 지켜보며 메스가 들어와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와 흡사했다. 그 때 그 기분은 너무나 신비스러운 현상으로 결코 나의 정신적 의지에 의해 일어난 결과는 아니었다. 이빨로 나를 물고 전후좌우로 흔들어 대는 사자의 머릿짓에 정신없이 온몸이 흔들렸는데 그런데도 나는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 이렇게 해서 모든 약한 동물들이 사나운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하겠구나. 그리고 그 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가졌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창조주께서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내리신 축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르네상스기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에서 굴러떨어진 경험을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머리에 총알을 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극도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했음은 물론 공포에 떨고 있던 아내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내 말을 끌어다가 집에 가져다 놓도록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당시 극도의 정신적 평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때 나는 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판단되었으나 쑤시거나 결리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냥 편안하고 느긋했다. 아무 해도 입지 않은 듯 느꼈다. 다만 약간의 무기력과 느긋함이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죽음이 눈앞에 있었으나 그는 두세 시간 동안 지극히 평화로운 순간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어딘가를 향해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평온함 대신 참기 힘든 고통이 뒤따랐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을 2, 3일 동안 겪으면서 나는 또 다시 내가 죽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처음 것과는 다른 끔찍할 정도로 아픈 죽음이었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몽테뉴의 가슴에 어떤 존재가 있어 고요함과 평안함을 불러일으켰다가 두세 시간 만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일까?
나의 군대시절 훈련소 동기이며 군번 하나 차이로 늘 옆에서 지내던 K는 베트남에 맹호부대로 파병되어 안케패스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방탄복을 착용하고 진지 위에 올라 잠시 산의 지형을 살펴볼 때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는 것을 감지했다.
별 일 아니라 생각하고 그냥 앉아 있는데 심장과 어깨 사이에서 갑자기 이상함을 느껴 손으로 문질러 본 순간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총상을 입었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평안함을 느끼고 느긋한 무기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모습은 강력한 마취제나 진정제를 투여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취제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거나 투여량이 많을 경우 두려움이나 통증은 사라지고 상처의 고통은 뿌옇고 부드러운 구름에 감싸듯 물러가게 된다.
많은 환자들이 행복감 같은 것을 증언하고 실제로도 모르핀 같은 마약을 투여한 후에는 느긋한 정도의 여유로움과 평안함이 찾아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심적 고통이 심하거나 많은 번뇌에 시달리는 이들이 마약을 경험하고 마취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마취제와는 달리 신체조직 내에서 생산되어 고통을 멈추게 하고 평안함과 행복함을 주는 마취제가 있다. 이것이 보고된 지는 30년 정도 되었고 이 물질이 보고될 당시 붙여진 이름은 두 단어 즉 ‘endogenous’(내생적인)이라는 형용사와 ‘morphine’(모르핀)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복합어다.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에 겨우 의학사전에 올랐던 endogenous는 “우리 신체 내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물질”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엔도르핀(endorphine)이라는 마취, 행복 호르몬이다. 중뇌와 간뇌 사이의 부분과 전두엽과 뇌하수체 등의 뇌조직은 스트레스에 반응해 엔도르핀을 분비해 낸다. 리빙스턴이나 몽테뉴나 나의 친구가 죽음 직전 느꼈던 평안함은 바로 이 엔도르핀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물론 극심한 부상을 당해 죽음에 직면한 위험의 순간 엔도르핀의 영향으로 극적인 평온함을 느낀 뒤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르며 부상의 정도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우리 신체는 대단히 급박하고 위험한 순간에 평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비밀은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흘러나와 스트레스를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실험결과 15초 이상 웃으면 5분간 통증을 잡아주고 행복감을 유지시켜주는 엔도르핀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30분만 웃으면 하루종일 평온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웃자! 웃자! 웃자!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