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윽.” 어제도 서류 정리를 돕다가 종이에 엄지손가락을 베었다. A4용지는 부드러운 표면을 위해 돌가루를 뿌린 종이라, 더욱 쓰라렸다. 분명 많은 격려를 받고 보람차게 하나 둘 인턴 업무를 해나가는데, 이런 종이 따위가 내 신경을 앗아갔다. 곧 아물, 이 찰나의 통증은 소중한 내 집중력을 잘게 조각내버렸다.
인간은 행복보다 고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동물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부딪치는 걸 피하고, 일을 그르치는 상황을 막으려고 한다.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사고의 위험을 분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조금의 손해도 피하고 줄이려는 인간이지만, 생생하고 뜨거운 피를 토해내며, 인간성과 대의, 정의에 몸을 던진 순국선열이 바로 그들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11월 17일이다. 법정기념일로, 우리가 이 나라의 주권을 찾고, 재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기념하는 날이다. 다른 국경일과 다를 게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순국선열의 날은 특히 주권과 인간성 회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분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려는 되새김의 날이다. 이름 없이 스러진 선열까지도 그렇다.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1905년 강제로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지만, 그게 11월 17일이었다는 점은 생소할 것이다. 처음 이날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한 주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1939년 임정 임시회의 총회에서 지청천, 차이석 등 요인의 제안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정해졌다. 이들은 외교권이 빼앗겨, 다른 나라와 대화조차 할 수 없게 된, 이런 치욕적인 날을 추모의 계기로 삼았다. 국권을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린 고통을 이웃과 나라가 함께 잊지 말자는 뜻깊은 생각이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당시 공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경술년 8월 29일의 병합 발표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국가의 종말을 고하였을 뿐이다. 사실상 을사년 11월 17일의 늑약으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기에 이날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삼는 바이다.(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1940.02.01.)” 을사늑약이 주권을 잃은 결정적인 순간이자 사건이라는 인식이다.
사랑은 고통과 비례한다. 쾌락의 중추와 고통의 중추는 이어졌다고도 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고, 내가 곧 그 대상이길 바라는 기다림의 고통은 그 사랑의 크기와 같다. 잃어버린 국권도 역시 그랬다. 순국선열이 강산에 흘린 피는 단순한 희생과 노력이 아닌 이웃과 나라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표현하는 나라사랑보다 더 격렬한 의지를 찾을 수 있을까. 국가보훈부는 매달 ‘이달의 독립유공자’를 선정한다. 보훈지청 벽에 붙은 독립유공자 포스터를 보면서 오늘, “순국선열의 선혈”, 그 의미를 좇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