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8월26일 ‘주민이 통합 결정하면 획기적 인센티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른바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행안부는 보도자료에서 “자치단체 경쟁력을 제고하고, 급격한 도시화·고령화 등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행정구역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자치단체간 통합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면서 의정부·양주·동두천, 남양주·구리, 안양·군포·의왕, 청주·청원 등 10개 지역 25개 시군구를 주요 통합 제기지역으로 손꼽았다.
행안부는 ▲도시지역은 자치기반 확충과 발전에 필요한 입지 부족, 농촌지역은 인구감소로 지역경제의 활력 저하 ▲광역적 도시행정 수요(광역교통망, 도시계획, 환경 및 자연보전계획 등)와 지역갈등 조정이 필요한 사안(쓰레기소각장, 추모공원, 하수처리장 등)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곤란하며, 확대된 생활·경제권과 행정구역간 불일치로 인해 주민불편과 부담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자치단체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좁은 국토를 230개로 잘게 쪼갠 현행 행정구역은 작은 규모 자치단체의 지역발전을 제약하고 ▲국가재정에 의존한 청사 또는 문화·체육시설 신축, 지역축제 증가 등 방만한 예산운용이 나타나며 ▲지자체간 경계를 넘는 광역적 지역발전 사업(새만금, 전북혁신도시 등)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어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통합을 강조한다.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 문제를 과대포장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게다가 행안부는 교부세 추가 지원, SOC 확충, 농어촌 주민 기존 혜택 유지 등의 인센티브까지 제시하는 등 자치단체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말이 자율통합이지 경우에 따라서는 강압적인 강제 통폐합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물론 행안부는 자치단체 통합 결정과정에서 주민의사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주민투표 등 법적 절차는 물론 필요시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주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획에 따르면 2010년 7월1일 통합 자치단체 출범을 목표로 주민·의회·단체장으로부터 9월말까지 통합 건의를 받아 10월초 여론조사, 10월 중순 의회의견 청취, 11월 주민투표 또는 의회 통합 의결, 2010년 1월 이후 통합 자치단체 출범 준비 등의 일정을 짜놓았다. 특히 지방자치법 제4조 제2항을 근거로 통합 관련 지방의회 모두의 찬성의결이 있으면 주민투표를 생략할 수 있어, 심각한 사회갈등 불씨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의정부시와 양주시, 동두천시는 역사적으로 한뿌리에서 출발한다. 서울을 중심축으로 삼아 동두천-양주-의정부로 이어지는 생활권도 비슷하다. 시세를 확장한 통일시대 거점도시로의 발전가능성도 매우 높다. 문화적 동질성도 숨어 있다. 학연·지연·혈연이 엉켜 있다.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3개시의 양주권 통합논의는 진정성 없는 정치놀음이라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통합 논의가 정치인 중심으로, 그것도 한나라당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히 통합을 주도하는 진원지가 시세가 가장 강한 의정부시의 정치인들이며,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다름 아닌 김문원 의정부시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수년간 인사적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의정부 공무원들도 합세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름의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고는 있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의보다는 사심이 더 커 보인다.
주민들은 지금 민주주의 파괴, 경기불황에 따른 생활고, 빈부격차, 빈곤층 확산 등 삶의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 때문에 시군 통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한나라당 중심의 정치인들과 그중 의정부 출신들이 시군 통합에 더 열을 내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이명박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언론법도 날치기 통과한 마당에 못할 게 없다. 지난 8월22일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양주권 통합 토론회 개최를 위한 예비모임에 참석한 한 의회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일사분란하게 의견을 일치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의견보다 당과 청와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둘째는 내년 지방선거다. ‘정치사령관’ 김문원 시장은 의정부경전철 적자 우려 및 대형참사, 중앙로 문화거리 사업, 업자들과의 해외골프 건 등으로 과거보다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 자칫하다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판을 갈자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의정부 43만명이 의정부 출신을 우선 선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역갈등을 부추길 공산이 큰 것이다.
의정부의 경우 민락지구를 개발하고 나면, 개발 가용지가 거의 바닥난다. 반면, 경기도 제2청 등 각종 광역행정기구가 포진되어 있다. 도시 인프라도 양주, 동두천보다 뛰어나다. 인구도 밀집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다른 것은 몰라도 양주의 넓은 땅이 필요하다. 동두천까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여론몰이를 하면 통합 찬성 분위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곳이다.(물론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의정부구민으로 살고자 하는 시민들도 있을 수 있다. 의정부시민 상당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등 생활·경제권이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비 등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양주와 동두천은 경계부터 한다. 의정부의 주민 혐오시설이 양주나 동두천 구석으로 잔뜩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 의정부 우선순위의 투자, 온갖 기득권 챙기기 등을 걱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양주 공무원들의 경우 늘어나는 인구 덕에 조직이 확대되어 승진이 빨라지는 등의 각종 혜택을 놓치기 때문에 반대 논리를 생산하고 있다. 유관단체를 앞장세운 반대 움직임도 포착된다. 동두천 공무원들은 처지가 더욱 절박하다. 반세기 동안 인구가 거의 늘지 않았다. 이제 고작 9만명이다.
게다가 무소속인 임충빈 양주시장과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차기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더욱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3개시 통합에 찬성하는 문희상 국회의원은 과거 “의정부소각장을 광역소각장이라고 부르면 나중에 양주·동두천 사람들 쓰레기까지 태워야 하니까 우리가 손해”라고 발언하는 등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모두가 이기적인 발상들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과 당근이 있더라도, 주민들의 피해의식이 존재한다면 이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정책이다.
진정 의정부 양주 동두천 3개시 양주권 통합을 원한다면 상생을 위한 의견존중, 대타협,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 우선 필요한 게 통합시청 소재지, 통합시 명칭 선정이다. 그리고 의정부시의 모든 기득권 포기다. 여기엔 3선을 노리는 김문원 시장을 필두로 의정부 정치인들의 통합시장 불출마, 통합시의회 의장 불출마 등도 포함된다. 대의명분이 충족된다면 역시 3선에 욕심있는 임충빈 시장과 재선을 꿈꾸는 오세창 시장을 비롯한 기존 모든 기득권 정치세력들도 합류하는 게 도리다. 통합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한나라당 출신의 안계철 의정부시의회 의장, 원대식 양주시의회 의장, 형남선 동두천시의회 의장도 제1순위로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기왕에 정치인들이 주축이 되어 통합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면, 선행해야 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통합시청은 가장 소외되고 시세가 약한 동두천에, 통합시 명칭은 근본 뿌리인 양주로 하겠다는 식으로 지역안배 차원의 여론을 조성하고, 불출마 선언을 한다면 양주권 통합에 전혀 무관심한 시민들도 하나 둘 귀를 열고 마음을 줄 것이다. 기득권 정치인들의 불출마 선언이라는 용기와 결단, 자기희생 없는 3개시 통합주장은 오로지 사리사욕, 당리당략에 다름 아니다.
3개시 통합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먼저 통합에 합의한 뒤 시청 소재지와 명칭을 정하자거나, 행정기관이나 각종 단체·시설 위치를 결정하자거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득권 정치세력 중심의 일방통행식 여론몰이는 반발과 불신을 불러올 우려가 크다.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백지상태에서 꼼꼼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