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급히 서두르고 일부 정치권에서 부화뇌동하고 있는 이른바 ‘자치단체 자율통합’ 계획이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심스런 세종시 논란의 복사판처럼 잣대도 기준도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나름의 법적, 제도적 절차를 밟아온 국가정책사업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느닷없는 총리의 원안 수정 한마디에 호랑이를 고양이로 만들려 하고 있고, 대통령의 “국가 백년대계에는 타협이 없다”는 한마디가 법과 민심인양 호들갑을 떤다.
자치단체 통합 또한 대통령 말 한마디로 모든 게 통하는 것처럼 하다가, 특별법도 제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밝힌 계획과 방침을 사실상 번복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10월 중순경→10월19~23일 사이→10월24일~11월6일 주민여론조사를 하겠다며 일정을 변경했다. 게다가 주민의 60% 이상이 찬성하면 의회의결을 거쳐 통합을 실시하고, 그 미만이면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해왔다. 50% 이하면 통합은 부결된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50% 이하로 나오더라도 통합 대상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이해 못할 방침이 흘러나왔다.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이 있을 수도 있어 찬성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통합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50%에 못 미치더라도 찬성 48%, 반대 49%로 오차범위 내에서 의견이 갈리거나 찬성 40%, 반대 30%로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오는 지역도 통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통합 대상 시군별로 1천명씩 여론조사를 한다는데, 개별 시군별로 찬반을 따질 것인지 모두 합쳐 나누기 할 것인지도 궁금해하는 등 기준을 알 수 없다고 불만이다. 조사일정, 질문항목 등은 당연히 비공개된 상태다. 사정이 이러하니, 말이 자율통합이지 정부 자의에 따른 일방통행식 강제통합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비밀스럽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독재시절에나 통했던 방식이다. 대다수 주민들은 통합 여부는 직접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어차피 주민투표로 가야 할 상황에서 비밀스럽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자살골 밖에 되지 않는다. 정책결정과 추진과정이 도덕성만큼 투명해야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 승복을 이끌어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정부의 행태는 자율통합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이어서 실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