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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2026-03-17 19:33:35 입력

1923년 12월2일 미국 뉴욕시에서 아테네대학 약대를 졸업한 약사인 아버지와 배우 지망생인 엄마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들은 양가 집안의 반대를 피해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태어난 딸은 둘째 딸로 ‘칼로예로플루’로 이름 붙였으나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 영어식으로 ‘칼라스’로 불렀다.

아버지는 아들을 기대하였으나 딸이 태어나 실망했고 어릴 때부터 뚱뚱한 체구와 고도 근시로 날씬한 언니와 비교되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배우와 성악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한 데 따른 불만과 순조롭지 않은 결혼생활 탓에 웃는 일이 없었고 그 가정은 항상 위태로운 상태를 유지했다.

1937년 부모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폭식증에 시달리며 한때는 100kg이 넘는 체중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칼라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뛰어난 음악 실력을 갖추었고 어머니는 그리스로 다시 돌아가 그녀에게 강제적으로 성악 공부를 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조금씩 양육비를 송금해주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두절되면서 세 모녀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때 어머니에게 강력히 떠밀려 첫째인 재키가 그리스 선박업체를 운영하던 부호의 내연녀가 되면서 칼라스 모녀는 극단적인 곤궁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 출간된 ‘마리아 칼라스 전기’에 따르면 전쟁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성매매를 했으며 마리아 칼라스 역시 성매매로 팔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켜 하지 않는 칼라스를 데리고 아테네음악원에 입학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보게 했으나 기초 성악 기교가 전무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그리스 국립음악원에도 입학원서를 내 오디션을 봤는데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다는 평가로 떨어질 뻔했지만 그 학교 성악교수인 마리아 트리벨라가 가능성을 인정해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트리벨라의 문하생이 된 칼라스는 프랑스식 성악훈련을 받았다. 1938년 공식 데뷔무대에 출연한 직후 어머니는 칼라스가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아테네음악원으로 다시 데려가 오디션을 보게 했다. 이 학교 오디션 주관 교수는 스페인 출신 엘비라 데 이달고였는데 매우 뛰어난 벨칸토 가수였고, 이달고는 칼라스의 목소리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달고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칼라스는 소프라노로 바꾸고 이달고의 벨칸토 창법을 집중적으로 전수받으며 기교가 출중하고 표현력도 대단한 성악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졸업 후 그리스 국립오페라단 비상근 단원으로 시작해 상근 단원으로 활약할 때쯤 그녀는 독일 협력자로 분류되어 활동 제약을 받고 곤궁한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그리스에 주둔한 영국군 통역원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그 후 미국의 아버지와 연락이 되어 1945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가수로서 오디션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이 때 그는 단역으로 출연할 때 95kg의 거구로 지적받았으며 작심하고 다이어트에 들어가 80kg까지 감량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성악가로 인정받지 못해 1947년 칼라스는 오디션용 옷 한 벌과 신발이 든 가방 하나만 들고 단신으로 이탈리아행 화물선에 올랐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도착한 칼라스는 오페라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을 만나 그가 그녀의 멘토가 되면서 그녀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그 후 정체된 그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업가가 나타났다.

그는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라는 사람이었고, 칼라스보다 28세 연상이었으며, 작은 키를 가진 사업가였다. 그는 칼라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그녀의 후원자가 되었다. 메네기니는 당장 그녀의 숙식도 해결해주었고 그녀를 위해 오페라 하우스의 전문가를 코치로 붙여주었고 그녀가 연습에 몰두할 수 있도록 피아니스트도 붙여주었다. 둘은 결혼하였고 그 후 남편의 인맥을 동원하여 페니체 극장과 계약을 맺고 트리스탄에 이어 투란도트에 출연하며 명성을 쌓아갔다.

1949년 1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오페라 극장에서 ‘니벨룽의 반지’ 제2부 ‘발 퀴레’의 공연 중 주역인 소프라노 마르게리타 카로지오가 인플루엔자로 앓아누워 하차하자 지휘를 맡은 세라핀의 요청을 받아들여 칼라스가 캐스팅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음악 창법과 막힘없이 소화해 내는 그녀의 매력에 모든 청중들은 매료되었고 그녀의 명성은 온나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 라스칼라에 데뷔 주역으로 정식 계약한 후 베르디 등 많은 오페라에 주연으로 칼라스의 인기는 높아만 갔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고 감명받은 칼라스는 오드리 헵번처럼 되고 싶어 1953년 봄부터 1954년 초까지 11개월 간에 30kg 이상을 감량해 북경오리에서 백조로 환골탈태한 몸매를 얻게 되었다.

1950년대를 최고의 황금기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던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1957년 그녀 부부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호화유람선 크리스티나호에 초청받았고 그곳에서 그녀는 비밀파티에 매료되게 되었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 그녀는 바로 짐을 싸 집을 나와 오나시스와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던 남편 메네기니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1959년 9월 이탈리아 언론에 이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스캔들은 터졌고 칼라스는 활동을 중단하고 반 은퇴상태로 들어갔다.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에 들어갔고 남편 메네기니와는 이혼하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이탈리아 법원은 메네기니의 손을 들어주어 이혼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3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서거한 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오나시스와 결혼함에 따라 혼자 쓸쓸히 파리로 돌아갔고 오나시스 자택을 떠나야 했다. 세계의 바람꾼 오나시스는 칼라스와 동거하면서도 재클린 케네디의 여동생 리 라지윌과의 내연관계를 언니와 결혼 전에 가지기도 했다.

1971년 오나시스와 재클린 간 불화가 심해지자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다시 만나기는 하였으나 원만한 관계를 이루어가지는 못했다. 칼라스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량의 약물에 중독되어 1977년 9월16일 아침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골함은 극성팬들에 의해 도난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자칭 후견인에 의해 유골은 에게해로 뿌려졌다.

이렇듯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온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20세기 오페라의 디바라는 큰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는 병중에도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서 젊은 시절 전성기 때의 음반을 듣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으며, 그때마다 항상 웃으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래. 그땐 넌 참 잘했어!” 우리의 유한된 삶을 정리할 때 “그땐 너 참 잘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을 가슴 속에 넣어두고 살기를.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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