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날치기 처리되었을 때, 부의장직을 버렸어야 했는데, 국회의원직을 버렸어야 했는데, 정계은퇴를 했어야 했는데 아직까지도 국회 부의장실에 앉아 있는 제 모습에 자괴감만 밀려옵니다.”
지난 7월22일 국회를 쓰레기장으로 만들면서 한나라당이 언론법을 날치기 처리한 나흘 뒤, 문희상 국회의원이 홈페이지 ‘희망통신’을 통해 국민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는 편지글에서 “빌붙어 방이나 지키고 있다는 개인적인 수치심이나 모욕감은 감수하더라도 국민이 주시는 녹만 축내고 있다는 송구스러움과 선택할 방법이 없다는 무기력감은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참담하고 참담합니다. 의자가 말 그대로 바늘방석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디어법 날치기로 현 정권에서 부활하기 시작한 권언유착이 본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되살려 놓은 권언유착이 피와 눈물로 이뤄놓은 민주주의를 통째로 들어내 버리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정무수석이자 노무현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분당할 때 열린우리당에 남아 당 의장까지 맡았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에 대한 의혹 발언을 하는 등 혼란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 18대 총선 때 어렵사리 당선되어 4선 의원으로서 야당 몫 부의장 자리에 앉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상징”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혀를 깨물며” 자신의 ‘침묵한 죄’를 비통하게 부르짖었고,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인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행동하는 양심’을 절규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10월29일 언론법 권한쟁의심판청구 등에 대해 ‘국회 통과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성은 있으나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4대강, 세종시, 언론법 등 이명박 정부의 과거회귀적 속도전에 입을 다물고 있다. 국회가 청와대와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되는 것을 막겠다는 큰 다짐도 말 뿐이다.
본인 스스로 “이제 ‘국회부의장 문희상’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직권상정이 임박했다는 상황보고를 듣고 국회의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 깨달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식물 부의장’이 됐음에도, 행동이 없다.
과거 ‘행동하는 양심’으로 지역에서 칭송 받던 ‘문희상’이 아쉽다. 언론법 날치기에 항의하여 민주당 천정배 최문순 의원이 사퇴서를 제출했고, 장세환 의원은 헌재 결정에 항의하여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국회를 박차고 나왔다. 문희상 의원도 사퇴서를 제출하기는 했다. 거기서 끝났다. 부의장실 의자가 아직도 바늘방석인지 안락의자인지는 그만이 알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전사”와 “행동하는 양심”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말의 잔치는 끝나야 한다. 말만 해서는 구차함과 국민에 대한 배신감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