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은 내란으로 추대된 왕이었다. 연산군의 폭정을 끝낸 공신들의 손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그의 재위 기간은 끊임없는 권력투쟁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특히 자신을 왕으로 만든 공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했던 조광조를 기묘사화로 숙청한 사건은 권력의 비정함과 책임 전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손을 잡았으나, 자신의 안위가 위태로워지자 가차 없이 동지를 내친 중종의 배신 정치는 현 정치권의 ‘공천 면피쇼’와 기묘하게 닮아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어김없이 인적 쇄신과 개혁 공천을 외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며 요란한 수사를 늘어놓지만 그 이면에는 책임 회피를 위한 정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하자 있는 인물들을 쳐내는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실제로는 지도부의 안위를 보존하거나 계파 간 이권 다툼의 결과물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차고 넘친다. 중종이 조광조의 개혁안이 부담스러워지자 ‘반역’으로 몰아세워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모습과 똑 닮았다.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위 ‘꼬리 자르기’는 전형적인 면피쇼다. 정책적 실패나 도덕적 결함이 드러났을 때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특정 인물을 배제하는 것으로 여론의 비난을 잠재우려 한다. 하지만 이 임시방편 꼼수는 결국 정치적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중종이 조광조를 버린 후 조선의 정치가 더욱 혼탁해졌듯 가치와 철학이 실종된 공천은 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치는 책임의 예술이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동지를 배신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는 오래갈 수 없다. 역사 속 중종은 우유부단함과 배신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공천 면피쇼 역시 훗날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허물을 덮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면피를 위한 쇼가 아닌, 진심이 담긴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국민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