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의정부여고 졸업 고대 법대 졸업 고대 법학연구원 연구원 본지 자문변호사 |
중국 양나라 때 양주 땅에서 살았던 정백린(程佰鱗)은 평소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모셨다. 어느 해 여름, 전쟁이 일어나 적병이 양주 땅으로 쳐들어오게 되자, 정백린은 집안에 모신 관세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그날 밤 관세음보살은 정백린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였다.
“그대의 가족 17명 중 16명은 무사히 피난할 수 있지만, 한 사람만은 안 된다.”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대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그대는 과거 전생에 어떤 사람을 칼로 26번 베어 죽인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 왕마자(王麻子)라는 이름의 대장군이 되어 양주 땅으로 쳐들어오고 있다. 이제 그대는 전생의 과보로 왕마자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대는 홀로 집안에 남아 피난 가는 가족들이라도 온전히 살 수 있도록 함이 좋으리라.”
정백린은 그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가족을 모두 피난시킨 다음, 집안에 홀로 남아 ‘관세음보살’을 부지런히 외웠다. 5일이 지나자 손에 칼을 뽑아든 장군 한 사람이 대문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섰고, 정백린은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왕마자 장군.”
순간 왕마자는 어리둥절해 하였다.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알고 있소?”
정백린은 관세음보살께서 현몽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왕마자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가 전생에 당신을 죽였으니, 오늘 내가 당신 손에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기꺼이 죽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원결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버리고, 다시는 서로 원수가 되지 맙시다.”
그 말을 들은 왕마자는 가슴 뭉클함을 느끼고 약속하였다.
“좋소이다. 오늘로써 전생의 원한을 모두 풀고 앞으로는 세세생생 다정한 벗이 됩시다.”
왕마자는 칼등으로 정백린의 몸을 26차례 가볍게 내리친 다음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가버렸다.
일타스님 법어집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전생의 업보’나 ‘참회’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에 대한 과보를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는다면 악업도 녹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 무슨 일을 당하게 되면 당장에 분해하고 억울해하고 어떻게 해서든 되갚아주고 싶어하지만, 그런 감정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고 망칠 뿐이다. 복수를 당한 상대방의 복수 또한 계속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악업이나 악연을 끊을 수 있다. ‘잊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다’는 말처럼, 나쁜 일은 잊는 것이 상책이고, 상대를 용서할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상대를 위해서 좋은 일은 곧 나에게도 좋은 일이며, 상대를 위한 일은 곧 나를 위한 일도 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