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농사는 씨앗보다 먼저 밭을 봅니다.”
추석을 앞둔 조합장 출마예정자도 마찬가지다. 명절 인사장을 만들고 현수막을 준비하기 전에, 지금 ‘선거의 밭’이 어떤 상태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2027년 3월3일 전국동시조합장선거까지 이제 반년 남짓이다. 달력으로 보면 시간이 남아 있는 듯하다. 추석을 보내고 추수철을 지나 연말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금세 달라진다. 후보자의 마음이 급해지는 시기다.
“추석 연하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현수막은 걸어도 됩니까?”, “조합원들에게 어떤 인사를 해야 좋습니까?” 요즘 출마예정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보다 먼저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지금 조합원들은 후보님의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농협을 잘 아는 사람인가, 조합원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인가,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줄 사람인가, 경영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인가, 말보다 실천이 빠른 사람인가.
이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하기 어렵다면 추석 홍보물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후보자의 현재 위치부터 확인하는 일이다.
추석은 이름을 알리는 때가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때다
농부는 수확기에 가서야 논밭을 돌보지 않는다. 봄부터 흙을 살피고 물길을 본다. 작물이 잘 자라는 곳과 뒤처지는 곳도 수시로 확인한다. 선거도 다르지 않다. 조합원 마음속에는 후보자의 평소 모습이 오래전부터 쌓여 있다.
인사하는 태도를 기억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담아들었는지도 기억한다. 약속한 일을 지켰는지, 어려울 때도 곁에 있었는지 알고 있다.
추석은 그런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때다. 후보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싶다. 이름도 더 알리고 싶다. 마음이 앞선다고 명절을 단순한 홍보기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이 보이는 것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명절 인사 한마디에도 후보자의 품격이 드러난다. 말이 지나치면 부담이 되고, 욕심이 보이면 진심이 흐려진다. 추석에는 선거 이야기를 크게 하는 사람보다 평소처럼 낮은 자세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오래 기억될 수 있다.
밭마다 물길이 다르듯 마을마다 표심의 흐름도 다르다
조합장선거는 관계의 선거다. 유권자 수가 한정돼 있고 서로의 관계가 촘촘하다. 같은 마을에서 살아왔다. 같은 영농회와 작목반에서 일했다. 농산물을 함께 출하했고, 농자재와 경제사업을 함께 이용했다. 후보자 한 사람의 평판도 이런 관계를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
표는 한 사람이 찍지만, 표심은 관계 속에서 익어간다. 추석 전후에는 선거구 전체를 한번 찬찬히 걸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한 마을이 정말 강한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조합원이 실제로도 가까워지고 있는가, 내 이름을 아는 사람과 나에게 조합을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어느 마을에서 경쟁 후보가 강한가, 어느 품목과 어느 세대에서 내 이야기가 약한가.
선거는 많이 돌아다닌다고 정리되지 않는다. 어디가 잘 자라고 있고, 어디에 물이 부족한지를 알아야 한다.
후보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때로 ‘좋은 말’이다
농사를 오래 지은 분들은 안다. 잎이 무성하다고 반드시 알곡까지 꽉 찬 것은 아니다. 후보자도 하루 종일 현장을 다니다 보면 듣기 좋은 말을 많이 듣는다. “이번에는 꼭 되셔야지요.”, “열심히 하십시오.”, “제가 돕겠습니다.”, “우리 마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힘이 나는 말이다. 그 말을 모두 내 표라고 계산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호감과 지지는 다르다. 지지와 투표도 다르다. 조합장선거에서는 서로 얼굴을 알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후보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다른 사람을 찍겠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후보자는 자신의 기대를 가끔 내려놓고 선거판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를 지지하는 사람인가, 후보자가 없는 자리에서도 나를 좋게 말해주는 사람인가, 다른 조합원을 연결해주는 사람인가, 마을 분위기가 달라지면 먼저 알려주는 사람인가. 지지는 말보다 행동에서 더 정확하게 보인다.
추석 전후 여론조사, 등수가 아니라 방향을 봐야 한다
도전자라면 적법한 범위에서 전문기관의 여론조사를 활용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몇 등인지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이 약한가, 인지도는 높은데 지지도가 따라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후보자가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경력을 조합원도 같은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조합원들은 판매와 유통을 원하는가, 경제사업 개선을 원하는가, 복지 확대를 바라는가,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는가 등의 내용을 읽어야 한다.
한 차례 조사한다면 연말 무렵 전체 판세를 점검하는 방법이 있다. 두 차례를 계획한다면 추석 전후에 첫 조사를 하고 연말에 다시 조사해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다. 첫 조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조사다. 두 번째는 그동안 제대로 움직였는지 확인하는 조사다. 농사로 치면 한번은 작황을 살피고, 다음에는 그동안 물을 주고 손본 것이 제대로 효과를 냈는지 확인하는 셈이다. 선거에서 숫자는 답안지가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명절일수록 선거법은 더 조심해야 한다
추석이 되면 평소보다 만남이 많아진다. 인사도 많아진다. 문자와 연하장, 현수막을 준비하는 후보도 늘어난다. 마음이 급할수록 법의 선은 더 선명하게 봐야 한다.
조합장선거는 일반 공직선거와 다른 위탁선거법의 적용을 받는다. 예비후보자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서 모든 선거운동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뒤 할 수 있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명절 인사도 대상과 내용, 방법을 살펴야 한다. 방문도 왜 만났는지, 무엇을 말했는지가 중요하다. 선거운동을 위한 호별방문은 금지된다. 휴대전화 가상번호 역시 법에서 정한 선거운동을 위한 제도이므로, ‘가상번호니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설명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 가장 위험한 말 중 하나는 “다른 후보도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농사도 남의 밭만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내 밭을 망칠 수 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묻고, 애매하면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해야 한다. 한번 더 확인하는 수고가 후보자를 지켜준다.
추석 전에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거창한 전략보고서부터 펼칠 필요는 없다. 종이 한 장을 꺼내 다섯 가지를 적어보면 된다.
1. 조합원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2. 내가 강한 마을과 약한 마을은 어디인가.
3.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실제로 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4. 이번 선거에서 조합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5. 추석이 지난 뒤 연말까지 무엇을 바꿀 것인가.
막연하게 적어서는 안 된다. 마을 이름이 나와야 한다. 조합원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내가 부족한 부분도 보여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혀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시작하면 명절 인사말도 달라진다. 찾아가야 할 곳도 달라진다. 공약의 우선 순위도 달라진다. 후보자의 하루 일정도 달라진다.
좋은 사람을 넘어 ‘맡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을 들녘의 결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여름의 비와 햇볕을 견디고 농부의 손길을 거쳐야 가을의 낟알이 된다. 조합원의 신뢰도 그렇다. 선거 며칠 전에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오늘 나눈 인사가 쌓인다. 조합원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시간이 쌓인다. 한번 한 약속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간 발걸음이 쌓인다. 법을 지키며 절제한 태도도 쌓인다. 그 모든 것이 결국 후보자의 이름이 된다.
추석은 이름을 많이 알리는 시기가 아니다. 조합원 마음속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지를 정하는 시기다. “인사 잘하는 사람.”, “좋은 사람.”
그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 “이 사람이라면 우리 조합을 맡겨도 되겠다.”
농부가 수확을 바라보며 오늘도 논밭을 살피듯, 출마예정자도 추석을 앞두고 자신의 선거 밭부터 찬찬히 돌아볼 때다. 연하장 한 장보다 먼저, 현수막 한 장보다 먼저. 내 선거는 지금 어디에서 잘 자라고 있고, 어디가 메말라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좋은 수확은 좋은 밭을 읽는 데서 시작된다. 좋은 선거도 그렇다.
서승하/위너스 선거전략연구소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