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세계적 과학 권위지 ‘디스커버(Discover)’지에 특집 논문이 실렸다. <제3의 침팬지>, <총, 균, 쇠>, <섹스의 진화> 등 인류 진화에 관한 과학서적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의 ‘일본인의 뿌리’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의 요지는 2400년 전 일본으로 대량 이주한 한국 민족이 일본인의 뿌리이며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고구려어가 변화된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남북한에서 쓰는 한국어는 고구려어보다는 신라 쪽에 가깝다고 그는 언급했다.
종전에 한일 양국의 역사학자들 사이에 서지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일 두 민족의 뿌리에 관한 학설은 종종 있었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처럼 서구의 저명한 권위자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직설적이고 단정적으로 일본인의 뿌리를 추적한 논문은 처음 있는 획기적인 일이다.
결국 오늘의 일본인은 한국 이민자들의 후예이며 많은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을 세운 것처럼 일본도 2400년 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의 조상들이 세워 발전시킨 나라라는 것이다. 이 다이아몬드 학설은 2차대전 시 많은 나라를 지배했던 선민의식이 강한 일본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논문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한때 수도였던 나라의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문물의 전래가 대륙이라는 모호한 기록으로만 적혀져 있고 백제나 고구려 등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일본인이기에 다이아몬드 교수의 논문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매스 미디어나 학자들 간에 맹렬한 반론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찬반 반응은 거의 없이 침묵이 지켜졌다. 자국의 중요한 국익이나 민족적 자존심에 관계되는 국제적 주장에 대해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맹렬한 반응을 나타내는 일본인데 이 논문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으며, 이는 세계적 석학의 논리에 대해 반박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기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일본인의 조상은 한국인’이라는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4세기 이전부터 벼농사 기술을 갖고 한반도의 한인들이 일본 땅으로 대량 이주하여 일본인들의 뿌리가 되었는데, 그 근거는 ‘체질인류학과 고고학’ 그리고 ‘고고언어학’적 연구성과를 종합 분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람이 일본인의 조상이라는 제1증거는 일본인이 한국인과 외모가 너무나 비슷하고 유전자가 같다는 데 있다.
제2증거는 언어학적 관점에서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의 독특한 한일 두 언어의 공통점과 특징이 있으며, 일본어는 집단 이민한 한인들이 쓰던 당시의 고구려 말이 변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제3증거는 일본의 고대 조각상을 살펴볼 때 아이누족이나 조몬족이 아니라 동아시아인 즉 한국인들의 조각상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인의 조상에 관해서는 세 가지 학설이 주로 대두되어 왔다. 일본문화는 1만여년 간 지속된 조몬 시대보다 700년 간의 짧은 야요이 시대에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그래서 일본민족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첫 번째 학설인 조몬의 수렵 채집인 자체가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학설로 몇몇 현대 일본인들에겐 설득력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 학설은 한국인 유전자가 일본인으로 유전되었다는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축소시키고 일본인이 최소 12000년 간 독자성을 지켜온 것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내포한 학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학설은 야요이 시대 어마어마한 한국인이 한국의 농업기술과 문화 그리고 유전자를 이주한 결과라는 학설로 일본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B.C 400년 전후 야요이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수백만명의 이주자를 받아들였고 이들은 조몬의 유전자를 압도하였으며 그 후 2000년 이상 한국 이민자의 자손들이 일본의 고유한 문화를 수정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세 번째 학설은 한국으로부터 이주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규모였다는 것은 부정하는 학설이다. 대신 생산성 높은 농경으로 인해 벼농사를 짓는 이주식량 생산자들의 수가 조몬 수렵 채집민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나 결국은 그들을 압도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록 적은 수의 이민자이지만 농경인들의 인구증가는 수렵 채집민의 인구증가보다 수십배, 수백배나 자손을 남길 것이고 이로 인해 두 번째 학설처럼 대규모 이주 없이도 한국인이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 역사에서 나타난 현상과 비교해 보더라도 다이아몬드 박사는 두 번째, 세 번째 학설이 첫 번째 학설보다 훨씬 더 타당하게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고분 시대에 이르러 일본인들의 골격은 일부 아이누인을 제외한 모든 골격이 한국인과 닮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그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의 이주는 현대 일본인들에게 정말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주가 대규모이든 소규모이든 높은 인구 팽창률과 관개수로를 이용한 벼농사 발전, 추운 기후에 견디는 벼 품종의 지속적인 개량, 나무삽과 괭이, 벼농사에 필요한 다른 기구 등의 대량생산, 철기의 발달 등이 한국인의 식량 생산 인구증가와 더불어 일본에 전파된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삼국이 신라로 통일되어 한국어는 신라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의 언어들은 현대 한국어보다 옛 일본어와 더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으로 일본과 한국 양국 국민의 정서적 감정에 비추어 어디서도 인기를 끌만한 주장은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다이아몬드 박사는 역사적 현실을 수긍해야 하며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라고 단언하였다.
비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같은 과거청산의 걸림돌이 불거져 나오거나 독도 같은 현실 문제에 일본 측이 인색하고 허욕을 발동할 때마다 우호적 관계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 박사의 ‘한핏줄 쌍둥이 형제론’을 받아들여 슬기롭게 이해 협력하는 선린우호의 국가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한일관계가 어찌 발전하든 웃는 오늘 되세요!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