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가 한창인 12월 밤. 낡은 작업복을 입고 일에 몰두하고 있는 유ㅇㅇ(47)씨는 추위를 모른다. 두 눈은 50㎝ 떨어진 기자의 얼굴도 윤곽만 보일 뿐이다. 80년 2월 부산의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은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답답한 것이 많았는데 세월 지나니까 다 수그러졌어요.”
간단한 삽질이나 물건 나르는 일이라도 중학생 남매를 키우는 유씨에겐 고마운 일자리다. 먼저 일하는 사람의 그림자만 보고 따라하는 그의 일솜씨는 눈 멀쩡한 이들 못지 않다. 그러나 그 일도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근근이 벌어들이는 날품과 60여만원의 지원금으로는 두 아이들 급식과 교복값 대기도 벅차다.
그래도 유씨는 바쁜 사람이다. 양주시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재활부장을 맡아 점자교육, 보행교육, 안마, 볼링 등 재활교육 프로그램 준비를 도우며 다른 장애인들을 통솔하고 있다.
“우리끼리 안마와 점자를 배우고 가르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전문강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절실한 일은 교통편 제공이다. 현재 시각장애인협회 차량 1대로 지역 곳곳의 장애인들을 돕는 일은 애초부터 무리다. 시각장애인 심부름센터가 들어오면 현재 1대인 차량이 3대로 증차되어 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센터장을 하라고 양주시에서 요구한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데 양주시만 유독 복지사 자격증을 요구한다고 해요.”
유씨의 다른 소망은, 직장 생활은 어차피 못할 것이라며 애들이 속 안 썩이고 잘 살아주는 것이다. 양주가 고향이라는 유씨. 아직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몸이 안 따라준다. 하지만 가장으로, 한 사회인으로 결코 장애에 굴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장애에 적응이 되요. 다른 장애인들 모두 힘들겠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