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뭄이 심해서 수확기의 들녘이 사막처럼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메마르고 황량한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어느 가장이 어느날 갑자기 에어리언처럼 농촌으로 침투해온 바다이야기에 빠졌다. 그 농부는 결국 가산을 몽땅 탕진하고 사채까지 얻어 쓰다가 사채업자의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가지에 목을 매어 죽은 시체를 그 아내가 발견하고는 그녀 또한 덩달아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어버린 사건이 또 발생했다.
“무간지옥으로 떨어져 버릴 놈덜 그냥...”
순간 김가다는 좀처럼 기억하기 싫은 10여년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팽개쳐졌던 폭풍의 언덕을 잠깐 떠올리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흩날렸다. 양주땅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김가다네 집에 세들어 살던 여자가 김가다의 인감도장을 도용해서 읍사무소에 디밀고 인감증명서를 위임받아 사채업자와 짜고 모사를 부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재산에 압류장이 날아들고 집달관이 들이닥쳐 가재도구에 빨간 딱지를 꽉꽉 찍어놓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가셨는데 30일만에 칠봉산 9부 능선에서 두릅 따러 갔던 마을 청년에게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 사채업자와 억울하기 짝이 없는 법정 다툼을 3년여동안 벌이는 동안 김가다네 가세는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김가다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고 의정부법원 복도에 서서 그 여자가 지렁이처럼 내어뱉었던 이죽거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용써봐야 소용없어. 결국 재판도 돈있고 빽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으니까!”
그 여자의 말대로 우리는 항소심에서 패하고 비분강개 했지만 어디가서 호소해봐야 계란으로 마른 하늘 때리기였다.
훗날 의정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지냈던 사람을 교회 집사님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 도중에 김가다는 그만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사건은 우리가 맡았는데요, 1500만원 받고 판결을 뒤집어 버렸죠.”
이제 그 기억하기 소름끼치는 사건은 모두 혼탁한 삶의 한모퉁이로 전설의 눈물을 삼킨 채 사라진 일이고 지금은 김가다의 삶의 질이 더 없이 평안하고 행복한 이유로 인해서 미워할 사람도 증오할 대상도 모두 없다. 하지만 그 추악했던 사채업자가 언뜻언뜻 뇌리에 떠올려 질 때마다 다른 한편에서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사채업자 광혁이란 친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는 광성중학교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김가다와 함께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었다.
지금 서울역 맞은편 양동 일대가 창녀촌의 바다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광혁이를 덤받이로 낳아 키우면서 그 창녀촌에서 무시무시한 조폭들을 한손에 쥐고 흔드는 악명높은 포주였었다. 어느날 그의 어머니와 정부가 정릉 숲속에서 온몸에 칼을 맞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렇게 되자 광혁이는 새로 들어선 조직에 떠밀려 알몸뚱이로 양동에서 쫓겨났지만 영등포시장 한쪽 구석에서 잔다리 밟아 힘을 키워가더니 10년 뒤에는 아무개 하면 그 바닥에서는 절대로 무시못할 존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록 조폭들이 우글거리는 험악한 세계에서 돈장사를 했지만 절대로 경우에 벗어나는 사채놀이는 하지 않았다. 돈을 줄 때는 반드시 돈 쓸 사람과 보증인을 대면한 자리에서 돈을 빌려주었다. 이자를 받아도 사람에 따라서 3부나 5부 이상은 절대로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채무자가 궤도를 벗어났다하면 그 보복이 잔혹하기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많은 부하들 중에서도 유독 광혁이를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가물치란 별명을 가진 뒤뿔치기 부하가 한명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