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고향이 없어 날아다니는 이동경로가 모두 고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쥐와 같다. 박쥐는 조류나 쥐류와 전혀 다른 동물이며, 새처럼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류다. 몸의 구조와 기능이 모두 날기에 편리하도록 발달되어 있다. 동화책에서 박쥐는 대세에 영합해 새였다가 육상동물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철새는 기온의 변화에 따라 여름이나 겨울에 적당한 산란장소나 생장조건이 갖춰진 곳으로 규칙적으로 이동한다. 그런 점에서는 해바라기와 같다. 향일화(向日花)·조일화(朝日花)라고도 부르는 해바라기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지만, 특히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양아치와도 같다. 동냥은 원래 스님들이 곡식을 얻기 위해 이 집 저 집 돌아다닌 일, 또는 얻은 곡식이라는 뜻이었다. 이 말에 사람을 뜻하는 'ㅡ아치'가 붙어서 '동냥아치'가 되었고, 준말이 양아치다. 양아치란 동냥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 구걸하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뭘 좀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게 아니라, '협박 공갈로 돈을 갈취하는 폭력집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일부 정치인들이 종종 박쥐와 같다거나, 해바라기라거나, 양아치라는 빈정거림을 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대의명분과 철학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 권력만을 잡으려는 모습 때문에 이같이 비유된다. 국민 앞에서는 국민을 무서워하고 떠받드는 척 하지만, 뒤 돌아서면 국민을 업신여기기 일쑤다. 종복이었다가 주인이었다가를 반복한다. 박쥐다. 권력이라는 ‘단물샘’ 앞으로 항상 얼굴을 향한다. 음지는 없고 양지만 있을 뿐이다. 권력지향은 노골적이기도 하고 은밀하기도 하다. 해바라기다. 막무가내로 표를 구걸하러 다니다가 가끔은 유권자들에게 온갖 협박을 해댄다. 양아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술 더떠 선거 때만 되면 이당 저당 문을 두드리며 자리 하나 차지하려는 패거리들이 있다. 정치철학과 신념, 지조는 오간데 없이 오로지 당선과 권력 부스러기를 탐하며 순식간에 언행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는다. 철새다. 한때는 민주투사였다가 지금은 극우투사로 바뀐 이들이 많다. 역겹다. 극과 극은 통한다. 철새정치, 철새정치인들이 우리지역에도 수두룩하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철새정치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공천과 당선을 위해서다. 철새들이 지긋지긋한 가면무도회를 계속 재방송하고 있다. 힘겨운 노동으로 생존을 위해 사람·자연과 투쟁하는 진짜 철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