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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해괴한 국어 실력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2010-04-17 10:12:58 입력

정부와 국방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고를 둘러싼 불안감과 궁금증은 여전하다. 정부와 군의 비상식적인 태도로 갖가지 유언비어와 의혹 등이 확산되고 있다. 험난한 바다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수색작업에 나섰던 군인 1명과 민간인 수명이 희생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주호 준위는 심해 잠수에 필요한 가압챔버 등 필수장비의 충분한 지원 없이 수색작업을 강행하다가 변을 당했다. 군이 뒤늦게 시작한 실종 군인의 원해 수색에 나섰던 쌍끌이어선 금양98호가 비극을 당한 것도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정부와 군은 사고 발생 후 실종자 수색, 침몰 군함 인양 등의 작업 추진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시행착오적 과오를 무수히 범했다. 한나라당에서 조차 볼멘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다. 무능한 정부와 선진화와는 너무 거리가 먼 군의 부적절한 대응, 늑장 대처 속에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사고원인에 대한 정보공개 수준은 국방부가 사고 직후 발표한 ‘폭발과 충격’의 안개 속을 맴돌고 있다.

사고원인의 실마리를 밝혀줄 교신일지 공개 거부, 사고 순간 촬영사진 비공개, 생존 군인의 대외접촉 차단 등으로 진상 은폐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 독도교과서 문제, 세종시, 4대강 사업, 불교에 대한 정부의 압력 행사의혹, MBC 문제 등도 다 침몰된 상태다.

정부와 군의 비상식적인 대처로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고 밝히는 등 이번 사건으로 국가의 위신은 적잖이 실추되었다. 미 대통령은 최대한 예의를 갖춘 제안을 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거기에는 미국이 진상을 파악하고 있으니 잘 해보라는 식의 무언의 압박이 엿보인다. 특히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려는 초조감도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군사적 충돌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에서 46명이 실종된 대형사건에 대해 정부와 군은 사고원인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지극히 비과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위기관리의 무뇌아로 낙인찍힐만한 태도다. 수구언론과 수구 정치세력은 정부의 애매한 언행을 구실삼아 북한이 원인제공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안보불안과 대북 적개심을 부추기는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다. 청와대가 수구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를 탓했다지만 유언비어 확산의 전제조건인 ‘사고의 심각성과 관련 정보 부족’을 방치 또는 조장한 당사자가 청와대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정부와 군은 사건 후 “천안함은 지난 26일 오후 9시30분쯤 백령도 서남방 1마일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뒷부분이 원인미상의 폭발로 파공돼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파공’이라는 용어다. 이 단어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은 “罷工 파공은 주일(主日)과 지정(指定)된 대축일(大祝日)에 육체(肉體) 노동(勞動)을 금(禁)함”으로만 나와 있다.

국방부가 ‘파괴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 단어의 의미는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파괴와 연관된 의미로 파공이라는 단어는 일어나 중국어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언론은 아무 문제제기 없이 이 단어를 보도 속에 사용했다. 정체불명의 단어를 사고원인 설명에 포함시킨 당국이나 그것을 보도한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지구촌의 궁금증 해소 필요성 등을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다.

‘파공’이라는 해괴한 단어는 사건발생 후 지금까지 사고원인이 오리무중인 것을 잘 상징한다. ‘원인미상의 폭발로 파공돼 침몰했다’는 당국의 발표 문장은 사고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더욱이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은 27일 유족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에서 침몰원인에 대해 “내부나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이라며 “인양 후 진상을 조사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중령의 발언은 사고원인을 더욱 짙은 안개 속에 가리게 만들었다. 세계가 주시하는 엄청난 사고원인에 대해 이런 식의 표현이 공개된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을 욕보이는 태도다.

국방부와 최 함장이 ‘폭발’, ‘파공’, ‘내부나 외부의 충격’, ‘인양 후 진상조사’라는 식으로 언급한 뒤 정부당국은 사고원인의 범위를 전혀 좁히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궁금증을 증폭시킬 단어를 골라 쓴 군 당국은 사건발생 후 지금까지 원인불명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도 군의 입장과 유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의 초동대응이 적절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군과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모든 사고에는 물적 증거와 인적 증언으로 진상을 규명한다. 정부와 군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 군함 생존 군인들의 증언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천안함 함장과 함께 구출된 나머지 장병들은 외부접촉이 차단된 상태다. 그들의 체험담식 증언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껏 이번 사고에 대해 나온 증거나 증언으로 보면 1천t이 넘는 선박을 두 조각 낼만한 큰 폭발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화상 환자, 불에 탄 부유물, 섬광과 폭음 등에 대한 증언 증거가 매우 부족하다. 폭발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증거, 증언도 충분치 않다. 침몰 관련 의문점은 함장과 생존 승무원, 인근 도서 주둔 군인이나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 윤곽을 좁힐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군은 이런 초보적인 조치를 외면한 채 쌩뚱맞은 언행을 하고 있으니 미국 대통령도 청와대에 전화를 걸만하다. 이번 사고가 폭발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만 군이 언급해도 의혹이 양산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와 군이 보여준 위기대처 능력은 한 해 수십조원의 예산과 수년간 군 현대화 계획이 추진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 태도는 자위능력이 턱 없이 부족한 후진적인 군의 모습이다.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2012년에 한국군에 넘기는 것이 너무 비이성적인 것이란 결론이 매우 자연스런 그런 군의 처량한 모습이다.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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