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통역사와 기자가 양주시 만송동 박춘식(62) 할아버지 집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요란스레 짖는다. 그러나 박 할아버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왼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고 오른쪽 귀만 간신히 쓸 수 있다. 이마저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수화를 모른다. 국가에서 지원해준 보청기에 의지해 오른쪽 귀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줘야만 알아듣는다.
“온몸 안 아픈 데가 없어. 귀가 안 들리니 주변에 신경도 많이 쓰이고….”
부엌에는 밥상이 싸늘히 식어 있다. 홀로 먹는 밥이 넘어갈 리 없다. 틀니를 일일이 끼고 먹기가 귀찮다고. 하지만 기초수급으로 지원받는 13만원, 장애수당 2만원으로 매 끼니를 챙겨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귀가 안 들리고 몸이 아프니 일할 수도 없다.
“귀가 아파 평행 장애가 일어나는 거예요.”
양주농아인협회 최진옥 수화통역사는 말한다.
딸 둘은 결혼해서 멀리 떨어져 있고,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할아버지 눈가가 젖어든다.
“집 나간 지 몇 년이 넘었어. 연락도 없고….”
농아인협회에서 신경 쓰려 하지만 4명의 수화통역사가 양주지역 450명을 보살펴야 한다. 개개인을 일일이 챙기기에는 힘에 부친다.
“나라에 바라는 것? 하고 싶은 말 해봤자 뭐해.”
수술이 필요하지만 돈 부담 때문에 병원에서 억지로 퇴원했다. 전화소리도 못 들어 코드를 빼놓았다. 농아인협회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 편지 뿐이다.
“세상이 무서워. 옛날엔 인심 좋았지…여긴 할아버지 대부터 대대로 고향인데.”
노인회관 등에 가도 말을 나눌 수 없으니 사람 만나기 불편해 자연히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 그냥 TV 화면만 보다 잠들 뿐이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원은 빨리 죽는 것. “살기 귀찮아. 살 생각도 없고, 빨리 죽었으면….”
“그런 말씀 마시고요. 지난번에 같이 놀러가서 재미있었잖아요. 10월이랑 11월에 또 놀러갈 테니까 건강하셔야 해요.”
수화통역사가 악을 쓰며 할아버지에게 건강하시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돌아서는 길, 할아버지는 기자와 수화통역사가 사라지는 모습을 문가에서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사회 무관심의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