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김가다는 서울로 물건을 떼러 나간다. 마누라가 한복에 전념하고부터 그 일을 시작했으니 벌서 15년째 광장시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노라니 헤아릴 수 없는 사건사고도 많이 겪었고 요절복통할 꼴도 많이 당했지만 이날도 날떠퀴가 사나웠던지 김가다의 삶의 한축이 그 사건 때문에 휘우뚱 거릴만큼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시장을 보고 남은 돈이 십일만원이었다. 김가다는 십만원짜리 수표를 영어성경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넣고 만원자리 한 장은 딴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수표는 마누라에게 반납할 것이고 만원은 말하자면 삥땅이었다. 시장에서 비닐 보따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106번 버스에 올랐다. 어제밤에 아들녀석이 온다고 해서 오랜만에 이야기나 나눌까 해서 기다렸더니 3시가 넘어도 낌새가 없기에 그제서야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통에 김가다는 그예 고개를 팍 꺾어놓고 잠에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타구니 쪽에 낌새가 이상하다 싶자 김가다가 후다닥 잠에서 깨었다.
“뭐, 뭐죠? 뭐하시는거죠 지금? 왜 남의 사타구니께다 팔꿈치를 들이대고 있는거죠?”
나이가 한 50쯤 될까말까해 뵈는 움펑눈이 아주머니가 묘한 눈길로 김가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간에 잔주름이 자글자글 했고 부챗살같은 속눈썹을 붙인데다 입술이 새빨간 것이 소사스럽고 천박한 티가 역력했다. 처음 만난 여자인데도 여간 잔미운 게 아니었다.
“아저씨 의정부 사세요? 꼭 예술가 같아요. 뭐 화가나 시인쯤 되요?”
“그, 그렇소만 이 팔꿈치 좀 치우고 말해요. 그런데 왜 묻습니까 그건?”
“전 관심있는 남자 분은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말씀인데...”
그녀는 핸드백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김가다의 손에 쥐어주었다. 김가다는 어리삥삥하여 얼떨결에 명함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쌍과부집? 뭐하는 뎁니까 여기가?”
“꼭 한번 들려주시면 제가 최고로 서비스 해 드릴게요.”
“글세 뭐하는 데냐니까요? 아무래도 아줌마 날 우습게 보구 잘못 찍은 것 같습니다. 난 쌍과부든 외과부든 과부 아줌마한테 서비스 받을 일 없는데요.”
“헤잉! 요즘 오므래미 영감님들도 얼마나 엉큼한데?”
“영감? 나 아직 50대요. 내 마누라도 날보고 영감이라고 안하는데 아줌마가 왜 날보고 영감이라고 하죠? 듣기 거북해요.”
그녀는 김가다의 말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여나므 장은 될 듯한 명함다발을 가방 속에서 삐죽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영어성경 책갈피 속에 무작스럽게 쑤셔넣고 있었다. 모름지기 쌍과부집이란 아랫녘 장수로 먹고 사는, 요즘 보기드문 색줏집이 틀림없다고 김가다는 생각했다.
“친구분들 데리고 와요. 그럼 영감님은 공짜로 서비스 해 줄게요.”
그녀는 김가다의 귓불에 입을 바짝 들이대고 속삭이듯 말했지만 김가다는 기분이 여간 께끄름한 것이 아니었다.
“또 영감? 자꾸 영감 영감 하지 맙세다아. 나 영감이란 소리 듣기 싫다구 진짜.”
바로 그때였다. 버스가 아스팔트를 할퀴듯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급정거했다. 할머니 한 분이 건널목도 아닌 곳을 무단횡단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버스 앞쪽으로 확 쏠리고 있었다. 김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도 중심을 잃고 앞으로 내달리더니 운전석 바로 뒤 쇠기둥에다 머리를 쾅 박더니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 모습이 여간 꼴불견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