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조목조목 적어준 쪽지를 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한 채 김가다(金家多)는 광장시장을 향해 서둘러 장돌뱅이 행보를 시작했다. 김가다가 이날 따라 아침나절부터 잰걸음을 시작한 것은 요즘 한창 세상을 벌집 쑤시듯 시끄러운 ‘다빈치코드’란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느 나라와는 달리 유독 한국에서만 예매율이 80%라고 신문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기에 대체 어떻게 제작된 영화이기에 그 난리법석을 치나 알기나 해 보자는 심사에서였다.
사실 김가다는 두어달 전에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고 하도 떠들썩 하기에 일부러 서점에 들러서 대강 훑어 보긴했지만 김가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었기에 일찍 책을 닫고 서점을 빠져나왔었다.
사실 인류역사 이래로 사탄은 수없이 많은 힘있는 정치가나 경제통, 또는 머리좋은 철학가나 천재적 문필가 등을 이용해서 인류의 영혼을 끊임없이 혼란시켜왔다. 사실 김가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믿었었다. 학교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너무도 그럴 듯 하게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목욕을 할 때마다 엉덩이 가운데 톡 불거져 나온 돌기를 만져보면서 김가다는 긴가민가 속으로 중얼거렸었다.
“이 자리가 바로 원숭이 꼬리가 퇴화되어 없어진 자리라 이 말 아냐. 그러니까 내 조상은 원숭이고 난 원숭이의 후손이라 이말이지...”
대학때는 스콜라 철학자들의 괴변에 심취해서 공연히 허무주의에 빠져 컴컴한 음악실 한쪽 구석에 하루종일 쳐박혀 담배만 죽살이지게 피워 대었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가 너무도 멋있어 보여서 그의 철학서를 보란 듯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고 쇼펜하우어의 시집을 밤이 타도록 노래했었다.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이나 나폴레옹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를 학대하는 정복자가 위대한 영웅으로 보여 그들을 하나님보다 더 존경했었다. 육백만이 넘는 유태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고 히틀러조차 영웅처럼 느껴질 정도로 김가다는 여간 위험한 인물이 아니었었다. 그처럼 김가다는 잘못된 천재들에 의해 쓰여진 사상을 조금도 여과없이 받아들인 인숭머레기였다.
김가다는 지금도 허룹숭이로 보내고 만 젊은 시절이 억울해서 울화가 치밀 지경이었다.
“긴 말이 뭐 필요해. 가장 소중한 진실은 오직 사랑이었는데 말이지...”
김가다는 광장시장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면서 마누라가 시킨대로 물건을 골고루 구입해다가 ‘멧돼지’란 단골 가게에다 맡겨 놓고 피카디리 극장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첫회 상영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자갈치 시장처럼 욱삭대는 사람들 틈새에서 김가다는 잠깐 암담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김가다 또래의 장년층 사람들은 한사람도 없었고 모두다 젊은 남녀들로 넘치듯 출렁거리고 있었다. 김가다는 은근히 속이 상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학교도 안가고 직장에도 안나가고 영화를 보러 왔다면 저들의 정체는 모두 무엇일까...”
어쨌거나 김가다는 제발 영화만큼이라도 재미나 있어서 본전 생각나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빈치코드가 왜곡된 진실을 허구로 포장한 소설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영화를 보았다고 해서 자신의 영혼이 상처받는 일은 어림도 없다고 스스로 자신했다.
<다음호에 계속>
-소설집 <여보, 나 여기 있어>,
-<트럼펫>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