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l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선조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열을 이루었다. 이날 독립선언식은 선조들의 반일감정이 자연발생적으로 폭발하는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학생들과 운동을 계획·준비한 종교계의 ‘민족대표 33인’은 장소를 태화관으로 바꾼 뒤 독립선언의 취지를 밝힌 다음 바로 일제 경찰에 자수했다. 극소수 친일파·친일지주·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전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이자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의 생존권 수호투쟁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운동경험이 하나로 수렴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을 기념하여 정부는 3월1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양주시 가래비 3·1운동순국기념사업회도 매년 가래비 기념비 앞에서 추념식 및 재현행사를 열며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3·1절을 하루 앞선 28일에는 의정부시 송산동 정문부 장군 묘역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 경성과 길주에서 정문부 의병장이 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 숙종 34년(1707년) 길주군에 세워진 것으로 1905년 러일전쟁중 일제에 의해 약탈돼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100년만인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에 반환됐으며 1일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성호 국회의원은 지난달 23일 대정부질문을 통해 “한중일간의 영토분쟁 문제는 통일 이후를 고려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북한과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역사를 알면 현실이 보이고, 현실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해방 이후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은 엄밀히 따지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제국주의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로 모든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을 수 밖에 없다. 분단은 우리 민족을 항상 위태하게 만드는 근본모순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국회의원은 한 당원교육 행사장에서 ‘지난 2000년 방북때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주니까 김대중이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있다 합의한 것이 6.15선언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일을 반대하는 수구세력의 정신분열이 집약된 말 같아서 코웃음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역사를 알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3·1절을 맞아 태극기가 온나라에 물결쳤다. 새로운 태극기가 한반도를 물결치는 그날, 우리의 반쪽짜리 3·1절은 온전하게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