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국왕이 병으로 직무를 보지 못하거나 또는 나이가 어려 섭정을 행할 때, 원로대신 중의 일부가 국정전반 정책 결정에 자문으로 참여하도록 승정원 내에 임시직책으로 원상(院相)을 뒀다. 성종대 이후에는 국왕의 즉위 때마다 상례적으로 원상제가 설치·운영되었으나 훈구세력의 집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여러번 혁파논의에 불을 댕겼다. 원상은 의정부·홍문관·승정원·경연(經筵) 등의 기능을 장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원상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겐로(元老)가 있었다. 겐로는 메이지(明治) 헌법이 공포된 1889년부터 1930년대 초까지 일본정부를 지배했던 초헌법적인 과두정치 지도자들이다. 헌법이 공포된 뒤 겐로는 천황의 개인적인 자문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좀처럼 권력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관료정치를 관장했다. 고대 로마에서 왕의 자문기관으로 출발한 원로원(元老院, Senatus)은 국내외 정책, 법률 제정, 재정·종교문제까지 사실상 관장하는 무소불위 통치기관으로 발전했다가 6세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날, 관직이나 나이·덕망 따위가 높고 나라에 공로가 많던 사람들을 일컬어 원로(元老)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일부는 권력을 탐하는 노인(老人)들로 항상 변질됐다. 이 때문에 노망을 부린다거나 망령이 들었다는 손가락질을 심심찮게 받는다.
목요상 전 국회의원은 지난 2004년 4.15 총선 때 낙선한 뒤로 정치일선에서 은퇴한 듯 외국도 마다않고 골프를 즐기더니 이번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지역에서 가장 바쁜 사람중 한명이 됐다. 공천권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이다. ‘내 사람을 정치에 심겠다’는 욕심에서 호불호(好不好)를 따지며 사람을 편가르고 있다고 한다. 고희를 넘긴 4선 국회의원이라면 지역의 ‘큰 어른’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지역원로란 현역 후배일꾼들이 가는 방향을 올바로 인도하고 자문을 해주면 그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감놔라 배놔라’ 고집을 부린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본지가 이달 3~4일 지역주민들에게 이같은 행태를 물어봤더니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과반수가 넘는 주민들이 ‘월권행위이기 때문에 문제’라거나 ‘현역 정치인들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관예우’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10%를 조금 넘는다.
일선 정치 관계자들로부터 ‘목대감’이라는 별칭을 듣는 현실을 목요상 전 국회의원과 일부 지역원로들은 곱씹어야 한다. 존경받는 원로가 될 것인지 지탄받는 노인이 될 것인지는 순전히 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