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 한복판 어느 낡은 집에 그 이름에 걸맞게 더없이 진지하고 성실한 신사 진지한 씨가 살고 있었다. 생활은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항상 차분한 마음으로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진지한 씨의 성격은 유전 탓인지 그 집에서 대대로 살았던 어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도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날 격식을 차린 간단한 점심 준비를 끝내고 식탁으로 가려고 할 때, 진지한 씨는 몹시 놀라고 말았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자신의 탁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더 까무러칠 일은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유령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집에서 밤 12시까지가 진지한 씨의 시간이고, 그 뒤부터는 유령의 시간이었다. 감기에 걸린 진지한 씨가 약을 먹고 너무 오래 자 버려 자기 시간으로 착각하고 유령의 시간에 깨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집이 진지한 씨의 집이라는 사실이다. 이 집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진지한 씨의 말에 유령은 오히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이 집은 자신의 집이라고 항의한다. 진지한 씨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집에 살고 있었고, 원래 정해진 모습이 없어서 그때 그때 집주인의 모습으로 한밤중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진지한 씨의 아버지 진지해 씨가 집주인이었을 때는 진지해 씨와 똑같은 얼굴로, 그 전에는 할아버지 진지함 씨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한밤중에 나타나 유령이 하는 일은 단 한가지였다. 그저 둥둥 떠다니며 집안에 쌓인 공기를 휘젓는 일이다. 그 집은 다른 집과는 달리 진지한 공기가 금방 쌓여 날마다 적당히 풀어 주지 않으면 점점 굳어 버린다. 그러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진지한 성격이 자꾸만 뒤틀리고 비꼬여, 결국에는 뒤틀린 화석 같은 고집불통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큰 도시 서울의 한복판 여의도라는 곳에 있는 오래된 집에도 진지한 씨만큼 진지한 사람들이 있다. 진지한 씨처럼 신사는 아니지만 그 집에만 살면 공기 탓인지 대대로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도 한밤중에 진지한 공기를 잘 휘젓지 않아서 이미 진지한 공기가 굳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집에 살고 있는 300여 명의 진지한 씨는 자꾸만 뒤틀리고 비꼬여 자기의 큰 실수는 못보고 남의 큰 실수만 보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다 보니 대를 이은 고집불통이 되어버려 공기를 휘저어 적당히 풀어줘야 할 유령까지 쫒아내고, 이제는 공기가 완전히 굳어버린 게 틀림없지 않나 싶다.
실수는 누구나 하고, 잘못은 누구나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 진지한 씨처럼 부끄러워한다. 그 집의 진짜 주인일지도 모를 유령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인 진지한 씨가 행복한 진지한 씨가 된 것처럼 여의도에 있는,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진지한 씨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뜨거운 맛을 당하기 전에 물러나야만 한다. “국민이 원한다”는 그들의 입버릇처럼 그 집을 만들어 낸 진짜 주인공인 국민들을 위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