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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민간인학살 ‘오바마의 미국’도 모르쇠
위키리스크, 이라크전 비밀문서 대방출…한국전쟁 연상
  2010-11-02 18:11:46 입력

▲ 고승우/미디어오늘 전문위원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자행된 범죄와 닮은꼴이다. 미국은 자국과 관련된 전쟁범죄에 대한 비밀기록을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침묵하거나 설령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도 책임지지 않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고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일기(warlogs)를 통해 폭로된 전쟁범죄에 대해 미국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식의 판에 박힌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자행된 전쟁범죄가 사실로 확인된 뒤에도 사과나 보상 등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 정부의 태도와 흡사하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22일 이라크군과 미·영국군 등이 이라크전쟁에서 자행한 고문, 살해, 인권유린과 같은 전쟁범죄에 대한 약 40만건의 비밀자료를 폭로했고 세계 유력 언론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즉각 ‘새로운 내용이 없다’, ‘이런 폭로는 미군 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높다’는 반응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제국주의 외교를 청산하겠다고 대선공약을 내걸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도덕성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나를 웅변하는 결정적인 사례다.

미국의 일부 보수언론 등은 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밀문건을 폭로한 위키리크스 대표가 성폭행 혐의 등의 부적절한 과거 행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미군의 전쟁 범죄 행각을 물타기하고 나섰다. 달을 가리키자 손가락만 보는 식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이영조)가 밝힌 것만도 38건에 이른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2007~2009년 접수하거나 규명한 미군 전쟁범죄 사례 가운데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동부지역에서 미군의 네이팜탄 투여로 동굴에 있던 민간인 360명이 사살됐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었다. 남부지역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197명이 희생당했다. 1950년 8월3일 여수에 정박돼 있던 난민선에 대한 미군의 공습으로 수백명이 희생됐다고 증인들이 증언했다. 1950년 7월11~12일 북한군과는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인 이리역(지금의 전북 익산)에서 약 300명의 민간인이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1950년 9월1일 포항시 인근 해안가 난민야영캠프에 대한 미 해군의 포격으로 100~200명이 사망했다. 당시의 승선 문서는 승무원들이 민간인에 대한 사격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뉴욕타임스 7월 11일)”

지난 1999년 AP통신은 1950년 7월 노근리에서 미군의 총격으로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인 민간인 400여명이 죽었다고 미군 병사들의 증언과 관련 비밀문건을 통해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01년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을 인정하고 그 사건에 대해서만 진상조사를 실시했으나 생존자들의 사과와 보상요구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있다

비밀 해제된 미국의 많은 기록문서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미군의 공식결정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1950년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미 공군 장교와의 교신 등에 의하면 침투세력을 경계하기 위해 미군에게 접근하는 피난민에게 발포하는 정책이 채택되었고 민간인 발포에 대한 미군 사령관들의 명령이 수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미군이 직접 총기를 휘두르거나, 한국군이나 경찰이 앞장선 학살현장에 미군이 있는 가운데 살해된 한국인 민간인은 최고 1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 및 미국 정부는 그에 대한 진상규명, 사과나 보상 등을 외면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07년 11월 예천 산성동 미군폭격 사건의 진실규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까지 미군 폭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8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미군 폭격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할 것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건은 증거 부족과 미군의 작전임무수행 등에 따른 민간인 희생이라는 이유로 미국 측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정하거나 국가에 권고하는 내용으로 그 수위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22일 폭로한 이라크 주둔 미군 비밀자료는 지난 7월 아프카니스탄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을 담은 비밀문건 9만건을 폭로한 데 이어 두번째다. 이라크 정부는 위키리크스의 폭로 후 성명을 내고 ‘미군 비밀문건에 담긴 이라크군의 부적절 행위에 대한 증거는 없었으며 미군 등 외국군의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 정부의 태도는 한국전쟁 범죄행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진실화해위가 미국과 한국의 동맹관계를 해치고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진실화해위의 활동기한 연장을 불허했다. 미군과 관련된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해 미국은 물론 관련국들이 자국민의 피해를 외면하는 행태와 꼭 닮은꼴이다.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과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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