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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미디어오늘 전문위원 |
21세기 민주정치는 협치(協治, governance)다. 협치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해소해 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식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정치는 협치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일상적으로 강압적인 통치를 앞세운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 강행, 한미 FTA 추진, 세종시 백지화 시도 과정 등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포폰과 천안함 사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그 과정에서 공무원이 대포폰을 이용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를 일상적으로 보좌하던 비서진이 대포폰 게이트에 연루된 것이 거의 확실한데 대통령은 침묵한다.
한 야당의원의 대포폰 게이트에 대한 두 번째 폭로는 매우 충격적이다. 청와대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정치인 사찰을 직접 주도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인 문건의 형태로 제기되었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사찰대상에는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한나라당 의원, 야당 대표는 물론 언론, 예술계 인사도 대거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대포폰은 범죄조직이 애용하는 물건의 하나다. 정부 조직에서 그것을 이용한 것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것은 민주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 조직도 보통 조직이 아니라 청와대와 총리실이다. 국가권력 기구에서 최고 정상급에 속하는 조직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사실 국제적 수치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을 보필하던 공직자가 범죄행위에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되는데도 침묵한다. 더욱이 여당 젊은 의원들도 검찰의 재수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판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검찰이 청와대의 안전판이 되기에는 너무 일이 커진 느낌이다. 이 사건은 미국 닉슨 대통령을 중도 퇴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의혹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제시했던 사고의 결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쏟아진 의혹 제기는 이미 의혹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방식으로 도출된 검증결과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라는 물체가 침몰의 주범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들이 언론매체의 전파와 활자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천안함 사고는 국제합동조사단이 구성되고, 유엔에서도 문제가 되었으며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단절시키는 결정에 앞장 선 초대형 사건이다. 국내외의 최고 관심사였던 이 사고로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미국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등 지구촌이 요동쳤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고는 북한이 일으켰다는 결론을 앞세워 북한의 사과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모든 관련부처도 천안함 사고는 북한이 주범이라는 확고한 결론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청와대의 결론을 뿌리 채 뒤흔드는 과학적 자료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을 청와대는 주시해야 한다. KBS는 합동조사단이 천암함 피폭의 근거로 내세운 흡착물질은 폭발과정에서 생긴 게 아니라는 분석 결과와 함께 사고현장의 ‘제3의 초소’에서도 문제의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다는 사실 등을 보도했다.
국방부가 국정감사에서 공개하겠다고 했던 천안함 유실 무기를 모두 폭파 처리한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한겨레신문도 천안함과 어뢰 추진체에 붙어 있는 흡착물질이 국방부 합동조사단 발표와 달리 폭발에 의해 생성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를 보도했다.
현 정부의 관련기관들이 대포폰 게이트와 천안함 사고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닮은꼴이다. 충격적인 것이 폭로되어도 ‘새로운 내용이 없다’, ‘사실이 아니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포폰 게이트와 관련해 폭로되는 공식 문건은 정부 내에서 작성된 것이며,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담은 물증이 속속 제시되는 것과 함께 이 사건과 관련된 증인이 엄청 많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현 상황을 살피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는 정직한 것이 최선이다. 정치를 공작이나 암수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더 늦기 전에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을 계속 궁금하게 하는 것은 국민을 화나게 만들고,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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