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부산 선암사에 ‘혜월’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혜월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끔 “나에게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두 자루의 훌륭한 칼이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을 통해서 널리 퍼졌습니다.
그 소문은 당시 경상남도를 책임지고 있던 일본 헌병대장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헌병대장은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 칼은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칼이 있다니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직접 혜월을 찾아갔습니다.
헌병대장이 찾아갔을 때, 마침 혜월은 산에 나무하러 가고 없어서 그가 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 기다리던 혜월이 등에 나무를 한 짐 지고 산에서 돌아왔는데, 헌병대장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허리에 두 자루의 큰 칼을 차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혜월은 허름한 옷에 나뭇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헌병대장은 실망하며 혜월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유명한 칼이 있다던데 나에게 보여줄 수 있소?” 혜월은 “보여 드리지요. 이리 올라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헌병대장은 그의 뒤를 따라 축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헌병대장이 축대 위에 올라가자, 갑자기 혜월이 그를 후려쳤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방어할 틈도 없이 헌병대장은 축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헌병대장은 부하가 보는 앞에서 큰 망신을 당한 것이 억울해서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러자 혜월이 축대에서 내려와 헌병대장을 일으키며 “많이 아프지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라고 말하더니 이어서 이러한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당신을 때린 손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이번에 당신을 일으켜 세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헌병대장은 혜월의 말에 크게 깨닫고 세 번 절을 한 후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칼로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맨 손으로도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깨를 내려쳐서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려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고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비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며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손뿐 아니라, 우리의 혀나 말로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어 힘들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따뜻한 말로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서 다른 사람을 좌절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좌절한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손이나 발이나 혀와 같은 신체를 가지고 타인을 위로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는 등 ‘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등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살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죽이는 사람입니까?
양주사랑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