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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안/시민운동가 |
나에게 양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양주별산대였다.
풍자와 해학의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2호로 한층 발전시키고 현대화해서 남녀노소 모두가 우리 선조의 애환과 양반사회의 풍자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젊은이들도 우리 것을 아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도록 각색도 더 한층 발전적으로 현대화하여 화합의 장이자 양주문화 고전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에 더하여 수도권 서민이 쉴 수 있고 놀이가 있는 질펀한 난장이 유양동 일대에서 밤을 지새우며 벌어져 수도권의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전래되어 온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일분파로 본산대라고 불리던 녹번, 아현, 구파발, 퇴계원, 송파, 사직골 등지의 산대놀이와 구별해서 별산대라고 부르고 있다. 18세기 무렵 양주에 사는 이을축이 서울의 사직골 딱딱이패를 본따 가면을 제작하고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양주땅에 정착하였으며, 이를 별산대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주목의 관아가 있었던 유양동을 중심으로 전래되어온 독특한 탈춤이다. 대개 대보름, 삼짇날, 초파일, 단오, 유두, 백중, 추석, 단풍놀이 등의 대소명절과 기우제의 행사로 공연되었다. 밤 10시에 시작되면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되었으며 형편에 따라 3~4시간으로 줄이는 수도 있다고 한다.
놀이는 모두 8과장으로 짜여 있으며 연회의 내용은 산대도감 계통의 공통된 내용으로 남녀의 갈등, 양반에 대한 풍자, 익살, 서민생활의 빈곤상 등 당시의 현실 폭로와 특권계급에 대한 반항정신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오늘날 산대놀이라 하면 이를 가리킬 만큼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양주에는 이밖에도 소놀이, 상여회다지, 양주농악 등 우리 전통문화가 잘 보존 전승되고 있다. 서울 근교인 양주에 우리 고유 서민 전통문화가 잘 살아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런 일이다.
최근 양주시에서 벌어지는 일단의 양주별산대 사태에 뜻있는 이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리며 이의 귀추를 지켜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양주시와 양주별산대 사단법인은 시민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일단의 분규를 조속히 종식시키고 우리 전통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바란다. 21세기 도시경쟁력은 자연보전과 문화창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