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8일 미국 한인뉴스가 아리조나의 CBS 뉴스를 인용하면서 불거진 미군의 비인도적인 고엽제 매립사건 충격이 일본의 대지진처럼 확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40여년 전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퇴역군인 몇명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양심고백을 했는데, 경북 칠곡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맹독성 고엽제 250여 드럼을 비밀리에 매립했다는 것이다.
당시 매립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는 월남전 당시 베트콩을 토벌하기 위해 밀림을 깡끄리 말려죽이던 그 무시무시한 제초제, 맹독성 발암물질이다. 그런 고엽제가 자그마치 250여 드럼이나 매립됐지만 치명적 작업에 동원된 인원수와 정확한 매립지는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군이 한국전쟁 때 노근리 양민학살 등 무차별적으로 민간인들을 폭격한 전쟁범죄와 다를 바 없는 중대 사건이다. 미군이 1970년대까지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고엽제를 살포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잇따르는 가운데, 캠프 캐럴은 물론 우리 지역인 동두천 캠프 케이시, 의정부 캠프 스탠리 등 대다수 미군기지에서 고엽제를 보관하며 이를 기지와 기지 인근에 살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비무장지대 인근에서는 고엽제를 제초제라고 속이며 주민들을 동원했다는 경악스런 증언도 나온다.
그런데 정부가 그동안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를 고엽제 뿌리듯 뿌려가며 반환되는 미군기지 토양정화사업을 진행해왔지만, 정작 고엽제의 다이옥신 성분은 빠진 채 석유계총탄화수소(TPH), 납, 카드뮴 등 토양환경보전법에 명시된 22개 항목만 오염여부를 조사해왔다는 사실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부가 다이옥신 오염여부를 추가 조사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 우리에게 반환되는 미군기지 대부분은 기름 등 각종 오염물질이 질퍽이는 죽은 땅이어서 토양정화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이같은 범죄행각을 뻔뻔하게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은폐하며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을까 국민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미군한테 관련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국제환경단체와 평화기구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고엽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미군의 광범위한 피해보상과 조사비용 및 치유비용 부담, 재발방지책 마련과 대국민 사과를 받아내고 불평등한 소파(SOFA)협정을 뜯어고치는 등 당당한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