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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민/외과전문의 |
잠시 하던 일을 접어 두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시기가 되었다. 여름은 짧지 않지만 직장인으로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여름은 불과 2~3주일여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먼 길을 다녀오다 보면 이런저런 신체의 무리가 뒤따르기도 한다. 휴가후유증이라고나 할까. 크고 작은 휴가후유증 중 유독 남들에게 차마 말 못하고 홀로 괴로워해야 하는 질병이 있으니, 바로 치열(痔裂)이다.
치열은 문자 그대로 항문이 찢어지는 질병이다. 다소 민망할 수도 우스워 보일 수도 있는 병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강도는 절대로 우습지 않다. 배변시마다 찾아오는 그야말로 찢어지는 아픔을 겪은 후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괴롭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러한 증상이 지속되면 화장실에 가는 것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이에 따라 변비가 심화되면서 치열 증상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한다.
치열은 처음에는 대부분 단단한 변에 의해 항문관이 직접 손상을 받아서 생긴다. 즉, 대부분의 치열은 변비로 인해 힘들게 배변을 한 후 발생된다. 특히 휴가지에서 불규칙하게 식사 및 배변을 함에 따라 변비가 발생되고 이후 자연스럽게 연쇄적으로 치열이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치열에 대해 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항문이 찢어지기만 한 급성치열의 경우 변비를 완화시켜주고 좌욕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호전된다. 따라서 급성치열은 채소나 과일 등 섬유질이 많은 음식물을 섭취하고 규칙적인 배변 습관을 유지하여 변비증상을 개선시키며 하루 수회 온수좌욕을 시행하도록 한다. 여기서의 온수좌욕은 약 30~40℃ 가량의 물에 약 5~10분 정도 환부를 담그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인근 병원에 방문하여 좌약 및 경구약 등을 처방 받아 사용하게 되면 좀더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문제는 만성치열이다. 치열 즉, 항문이 찢어지고 낫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다보면 치열 부위에 영구적인 궤양이 형성되고 주위 조직이 비후되는 전형적인 만성치열이 된다. 더욱 악화되면 항문의 연한 조직이 점차 뻣뻣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어 급기야 항문이 좁아지기까지 한다. 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낫기가 힘들다.
따라서 온수좌욕이나 식이요법만으로 호전되지 않는 치열이 오랜 기간 반복된다면 위와 같은 만성치열을 의심하고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진단 결과 만성치열로 판명되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만성치열을 계속 방치하면 항문 조직 섬유화 때문에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치열의 발생 위치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단순 치열의 경우 치열의 위치가 대부분 항문의 후방 및 전방 중앙 부위에 잘 생긴다. 하지만 치열이 다른 부위에 발생한다면 결핵, 백혈병, 항문암 등의 심각한 질병에 의한 치열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경우 급성, 만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병원을 방문하여 검사 받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