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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일락/양주사랑교회 목사 |
수년 전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160마리 정도의 쥐를 안락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210㎤의 네모상자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과 음식을 충분히 주고 쥐가 늙어죽는 것을 제하고는 죽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지상천국이었습니다.
2년 반만에 8마리의 쥐는 2천200마리로 늘어났습니다. 상자 안에 더 이상 번식할 수 없는 상황,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인 상황에 쥐들을 그대로 두고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을 실험심리학자인 존 칼훈(John Calhoun) 박사는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쥐의 숫자가 절정에 달하면서 쥐 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쥐 중에 12마리 정도가 배타적인 집단을 형성하며 특별한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하고, 지도적 위치에 있던 수컷들이 자기 역할을 중단하고 수동적으로 변하는 대신 암컷들이 사나워졌습니다.
암컷들은 새끼들을 내몰고, 새끼들은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며 마음대로 먹고 마셨습니다. 어린 쥐들은 사회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했고 정상적인 활력도 찾지 못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먹을 것이 계속 공급되는 등 다른 조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쥐들은 결국 5년 만에 다 죽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칼훈 박사가 발견한 것은 쥐들의 강한 독립성과 극단적 고립증후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쥐들에게 가장 복잡하고 강렬한 행위인 구애와 교접행위가 맨 먼저 중단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접근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고립시키고 고독을 즐기다 혼자 죽는 것입니다. 칼훈 박사는 쥐 실험으로 얻은 관찰 결과를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발표하기를, 사람도 마찬가지로 탈출할 수 없고 스트레스 요인을 동반한 과밀한 상태에서는 먼저 사고가 중단되고 목표와 이상 그리고 가치기준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자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감싸고 고립시킵니다. 그러다 각자 외로워하며 죽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세상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여자들의 힘이 점점 세져, 드라마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시대는 지나가고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남자가 한 대를 때리면 여자는 두 대를 때리고, 남자가 두 대를 때리면 여자는 세 대를 때리면서 발로 찹니다. 여자에게 쩔쩔매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남자들은 점점 기가 죽습니다. 현실적으로 남자들이 50세가 넘으면 여자들에게 맥을 못 춥니다. 갈수록 더 합니다. 따라서 남자들의 지도력이 점점 약해집니다.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여자들의 진출이 괄목할 만큼 두드러집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은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멋대로 자라고,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해 사회 문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물질생활은 풍요로워지고, 사람이 즐겁고 재미있게 지낼 여건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로워 못살겠다고 합니다. 전부 고독합니다. 인터넷, 포르노, 도박, 알코올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기소외현상도 날로 늘어갑니다.
지금처럼 각박하고 절망적이며 메말라가는 우리 가슴과 사회 속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은 이기주의와는 정반대 입장인 다른 사람을 섬기는 주님의 섬김입니다. 섬김이 회복될 때 정작 우리가 찾던 삶의 가치와 목적을 찾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구점 경영으로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가 많이 왔습니다. 오후였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그 가구점 앞에서 추워 왔다갔다 합니다. 그것을 가구점 안에서 보고 있던 주인이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그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아니, 추우신데 밖에 계시지 말고 가구점 안으로 들어오세요. 비를 피하세요. 여기는 참 따뜻해요.” 할머니가 말합니다. “아니에요. 나는 가구 사려고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고, 비가 오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가구점 주인이 말합니다. “알아요. 가구 안 사셔도 괜찮아요. 가구 사시라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지금 추우시니까, 비가 오니까, 이 비를 피하시고요. 이 따뜻한데 좀 들어오세요.” 가구점 안으로 모셨어요. 그리고 아주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갔습니다. 한 일주일쯤 되고,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 그룹 회장실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만나기를 원합니다. 들어오시죠. 그 편지를 받고 이 가구점 주인은 깜짝 놀래요. 이거 편지가 잘못 온 거 아닌가?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게 맞습니다. 좀 보자는 겁니다. 들어갔습니다.
누구를 만났습니까? 강철왕 카네기를 만났습니다. 강철왕 카네기가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얼마 전 당신 가구점 앞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그 비 맞고 추워서 달달 떨고 있던 그 할머니가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의 어머니께 그렇게 잘 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우리 어머니 말씀을 들으니까 당신 너무 착하답니다. 올해부터 우리 그룹에 납품하는 전체 가구를 당신이 다 납품하십시오.” 벼락부자가 된 겁니다. 뭐 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비를 맞고 비를 피하기 위해서 추워 왔다갔다 할 때, 그 분 한분 섬겼더니, 잠시 섬겼더니, 그 축복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강퍅하고 무엇인가 채우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웃을 돌아보며 관심으로 함께 따뜻한 겨울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