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종안/시민운동가 |
행복은 늘 자기 곁에 있음에도 우리는 멀리 피안의 세계에서 행복을 찾고자 오늘도 많은 수고를 한다. 그리고 팍팍한 인생을 탓하고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실망한다. 좌절과 자포자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반성도 해보지만 늘 자기 사고에 갇혀 맴돌다가 또 다른 일상을 맞아 허둥대며 살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벌써 13년 전, 1999년 1월16일 새 찬 추위와 눈 쌓인 지리산 계곡 길에서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겨울학교 강의를 듣고자 지리산 육모정 안내소에서 행사장 콘도를 지름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모하게도 오로지 지각하지 않고 도착하고자 곡예운전을 하고 험난한 산길에 올랐다, 오르고 내림을 몇번 반복하며 눈 녹은 양지 길과 음지 눈길을 교대로 달렸다.
내리막길에서 길이 음지인 탓에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어쩔 수 없이 내 차는 속수무책으로 제동이 되지 않은 채 후미진 커브 길 다리 앞에서 순간 절벽으로 다이빙하였다. 어~어! 소리지르고 생과 사의 절벽 아래로 내리꽂혔다.
정적의 순간이 흐른 뒤 눈을 떠보니 내 시야에 하얀 에어백이 나를 감싸고 있어 운전대에 받치어 짓눌리는 것을 막아 주고, 옆 에어백은 차벽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핸드폰을 찾으려 안 호주머니를 더듬었는데 사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순간 충격으로 기절과 경련 마비현상이 근육을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안전벨트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잠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안전벨트를 풀고 핸드폰을 작동했으나 불통지역이었다. 차문이 열리지 않아 유리창을 깨고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내차는 계곡 절벽 아래 바위에 코를 박고 그 반동으로 솟구쳐 오른 뒤, 뒤집힌 채로 싸리나무 덩굴 잡목이 무성한 나무 쿠션 위에 거꾸로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
천만다행으로 넝쿨과 키작은 잡목들이 차를 받쳐주어 생명을 살려주었다. 모든 힘을 다하여 절벽을 더듬으며 나무를 잡고 겨우 겨우 도로로 올라왔다. 땅거미는 들고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심한 통증도 모르고 기도하며 도로 길을 보았다.
잠시 뒤 희미한 불빛이 보이며 불빛이 계곡 길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목도리를 풀어 흔들며 차를 맞았다. 차에는 부부가 탔는데 나를 보고 이 분들이 더 놀랐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계곡 길에서 소리지르며 목도리를 흔드는 나를 보고 귀신인 줄 알았단다.
이 분들이 겨우 정신 차리고, 나의 말과 차가 계곡 아래 떨어진 사실을 보고 이 분들도 가는 길을 포기하고 나를 태우고 산 아래로 내려와 나의 생명을 건졌다. 나는 경황 중 지금도 이 분들이 누구인줄도 모른다. 바로 그 밤 나는 서울로 이송되어 약 40일간 병원에 입원하였다. 내 평생 후송하여 오는 3시간의 그 아픈 통증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 심한 후유증으로 11년 뒤인 2010년 목 디스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사지마비로 휠체어를 탈 수 밖에 없다는 병원의 진단을 받고 목숨을 걸고 대수술을 했다. 눈부신 의료술의 발달로 6개의 인공디스크를 교체 받아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이 글을 쓴다.
절벽에서 한번, 수술에서 또 한번 이렇게 두 번씩이나 살려주셨는데도 어리석은 나는 보다 큰 감동과 복을 주지 않는다고 그동안 투정하고 냉담하며 살았다. 이제야 잊어버린 은혜를 되찾고 뒤늦게 회개하고 반성하며, 행복은 내 안에 있음을 깊이 깨닫고 지금의 삶에, 새해 아침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