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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100세까지 천수를 누린 시골 할아버지가 곡기를 끊고 마지막으로 부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해서 좋았고, 좋았고 또 좋았소. 다시 산다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요.” 부인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요. 이제 저곳으로 가서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1993년 8월24일 할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으로 기쁘고 희망차게 출발했고 영원한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혼의 새로운 깨어남을 위한 여행이었고, 또다른 무한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죽을 것인데 한줌이 된 자신을 바다가 보이는 나무 아래에 뿌려달라고 아내에게 당부했다. 이 시골 할아버지 이름은 ‘스코트 니어링’이고 부인 이름은 ‘헬렌 니어링’이다.
스코트 니어링은 경제학자, 철학자, 작가, 정치인, 환경운동가, 민권운동가, 웅변가, 농부 등 한 인간이 세상을 살기에 너무나 많은 일들을 섭렵하며 활기찬 삶을 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스코트가 다녀갔기에 이 세상은 더 좋아졌다.”
능력이 뛰어난 그였지만 인생의 반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아동노동문제의 부당성을 호소하다가 해고당했다. 톨레도 대학에서는 반전운동을 펼치다가 해고당했다. 오십이 다된 이 사회운동가를 받아주는 대학은 더 이상 없었다. 첫 아내와도 이별하고 자식들과도 연을 끊고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다.
이 때 아내 헬렌을 만났다. 오십이 다된 급진적이고 옳고 그름에 칼 같은 그와 바이올린 연주자로 세계 순회연주를 꿈꾸며 열정적으로 살던 그보다 20살이나 어린 젊고 재기 발랄한 아가씨와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다. 그러나 헬렌은 같은 빈민가로 들어와 자신의 꿈을 접고 스코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그 후 도시를 떠나 버먼트주와 메인주에서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일구며 50여년을 같이 살았다. 세상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코트와 자신처럼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에 헬렌은 연주가의 꿈을 내려놓고 스코트를 극진히 사랑하며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산 것이다.
그들의 삶의 철학은 단순했다. 하루 네 시간은 먹기 위한 노동에 사용하고, 네 시간은 사람들을 만나 친교를 나누고, 네 시간은 독서나 글쓰기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명상과 쉼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했다. 스코트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알려져 그들의 탈도시에 영향을 미쳤으며 진정한 자유인으로 행복한 삶을 깨닫게 하는데 큰 동기부여를 하였다. 거액의 유산 상속자였지만 이를 거부하였고, 800달러 주고 산 공채가 6만달러가 넘는 가치로 평가되자 공채들을 미련 없이 난로 속에 집어던진 스코트 니어링은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조화로운 삶’,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등 10여종의 책을 저술했으며 ‘스코트 니어링 평전’은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스코트의 무소유 철학을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귀농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져간다. 특히 10년, 20년 후엔 먹거리가 고갈되어 자급하지 못하면 식량의 대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예측하여 귀농을 서두르는 이들도 점점 많아진다. 귀농의 원인이 무엇이든 모두 진정한 자유인으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도시 생활보다 몇 갑절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웃음이 더 많아진 귀농이었으면 좋겠다.
삭막한 도시보다 자연과 조화된 농촌의 삶은 훨씬 더 여유있어 웃음과 어울린다. 진정한 자유인이라면 그의 삶에서 늘 웃음이 묻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스코트 니어링 부부처럼 진정한 자유인으로 천수를 다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아름다운 이별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