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매주 토요일 저녁 아홉시에 칠레산 목살 한 근을 달라고 하셨죠. 투명 유리 진열장 앞에서 당신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부위별로 썰어놓은 고기들을 구경하면서 기다렸어요. 여름인데 당신은 고아처럼 추워 보였죠.
호주산 아래 칸에 칠레산 명찰을 붙인 고기를 당신이 보는 앞에서 꺼내 ‘잘라 드려요?’ 했어요. 당신은 고개를 끄덕거렸죠. 전자저울에 목살을 올리자 빨간 숫자가 나타나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 숨고르기를 부지런히 하더니 5678에 멈췄어요. 지난 주에는 5668이었죠.
당신은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한 주먹 꺼내 다섯장을, 백원짜리 일곱 개를 전자저울 옆에 놓았죠. 그리고 나머지 지폐를 다시 주머니에 구겨 넣었어요. 당신은 이 모든 동작을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로 했죠.
까만 비닐 봉투에 목살을 싸서 백원짜리 일곱개 중 하나를 두 손으로 당신에게 도로 내밀었죠. 당신은 까만 비닐 봉투를 받으면서 제 손을 보고 잠시 놀라더니 백원은 두고 목살만 들고 그만 가버렸어요. 고기 써는 기계에 손가락 네개가 단번에 잘려나가 뭉툭해진 손끝을 당신이 보신거죠.
엄마가 잃어버린 아기를 찾듯이 가끔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가 아팠어요. 전 미안했죠. 먼저는 제 손에게 그리고 그동안 무수히 잘라버린 고기들과 뼈에게…. 마지막으로 당신께. 당신은 잘려진 제 손끝을 보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후 당신이 칠레산 목살을 사러 왔을 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제 남편을 보았죠. 막내 동생같이 젊은 당신에게 남편은 오이지처럼 쪼그라들어 겨우 붙어 있는 다리를 보여주려 일어서다 휄체어에서 넘어졌지요. 저는 아이를 둘이나 낳은 여자였어요. 당신은 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청년이었구요. 제 손가락이, 남편의 다리가 부끄러웠어요. 그때 당신은 웃지 않아도 주름진 제 얼굴을 봐야 했어요.
당신은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왼쪽 손을 꺼내 보여 주었죠. 철판을 절단하는 기계에 손목을 함께 밀어 의수를 하고 하얀 면장갑을 끼고 있었죠. 잘린 당신의 손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묻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 살점을 턱턱 끊어내고 엉덩이에 붙어 파리를 쫓아내던 소꼬리를 토막내던 제 주먹을 당신은 하얀 면장갑 낀 손으로 잡았어요. 미안하고 수줍었어요. 전 여자가 아니었는데 당신이 손을 잡자 마술이 풀려 갑자기 여자가 되었죠.
당신은 칠레에 가자고 했어요. 그 긴 나라 칠레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옆에 두고 걸어 보자 했죠. 당신과 같이 칠레 바다를 걸어야 하는 여자가 왜 나냐고 물어야 했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열장에 썰어놓은 고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죠.
당신은 전자저울 바닥에 매직으로 전화번호를 적었죠. 전자저울은 휴즈가 다된 백열전구처럼 빨간 불빛이 가물가물 거렸어요. 아니요, 모닥불 장작이 다 타고 불씨만 남아 가끔 바람이 불 때면 반짝였다가 이내 전자저울에서 스러졌죠.
남편을 요양원에 보낸 후 정육점을 정리하고 당신을 기다렸죠. 새 주인에게 정육점 인수인계를 끝내고 열대야로 나라 전체가 방금 삶은 고기같은 말복이 지나도록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난 전자저울에 적힌 당신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수화기를 들었어요. 신호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번호는 결번이라고 여자 기계가 천천히 또박또박 알려주었죠. 미안하도록 너무 친절하게 말하는 바람에 기다리기만 하면 곧 당신을 바꿔주겠다는 소리로 들렸죠.
고기 써는 기계에 뭉턱 잘린 제 손가락은 새 가지가 돋지 않는 나무처럼 오그라들어 그대론데 당신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었는지요. 당신은 정육점 문을 열고 제게로 걸어온 사람이 아니라 제 안에서 시작된 사람이었는지요.
전 당신을 기다리다 혼자 칠레행 밤 비행기를 탔어요. 비행기가 육지를 벗어나면서 몸과 내장이 분리되었다가 하늘 가운데에서 제 자리를 찾았죠. 칠레행 비행기는 검은 바다에 떠 있는 고래였어요. 제가 타고 있는 고래는 칠레 바다에서 보낸 음파를 기억하고 당신에게 가려는지요.